로컬에서 시작된 변화, 이제는 함께 나눌 때
“지방에서는 뭘 해도 안 된다.”
한때는 너무나 익숙하게 들리던 이 말이, 이제는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선언처럼 들린다.
나는 지난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로컬’이라는 이름의 무대에서 부딪히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그 말이 틀렸음을 증명해 왔다.
내가 말하는 로컬은 단지 서울 바깥의 ‘지방’을 뜻하지 않는다. 변화가 절실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이자 기회의 무대라고 생각한다.
지역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문제가 많다. 청년 실업, 경력단절, 고령화, 인구 유출 같은 이슈는 서울보다 지방에서 훨씬 더 절박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들 속에서 오히려 창업의 기회를 봐왔다.
광주에서 ‘문제 해결형 창업’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다양한 실험을 해왔다. 미국 CES에 지역 스타트업을 이끌고 참가시키고, 호남권 최초로 TIPS 운영사로 선정되어 창업 생태계 고도화에 힘써왔다. 지역의 자원을 하나하나 발굴하고 연결하는 과정을 통해 나는 한 가지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는 이번에 출간하는 책 『로컬의 힘, 지역경제를 바꾸다』에 고스란히 실었다. 자서전이 아닌, 나의 실패와 재기, 수많은 지역 창업자들과의 동행, 그리고 현장에서 발견한 로컬의 가능성을 기록한 ‘변화의 이야기’이다.
나처럼 창업을 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지역 창업에 관심 있는 친구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지역은 새로운 시도를 하기 가장 좋은 작은 무대다.”
대도시처럼 과열된 경쟁은 덜하고, 시행착오를 받아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사람과 사람이 가깝기에 네트워크는 빠르게 형성되고, 행정과 민간, 대학과 시민사회가 한자리에 모여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 있다고 본다. 그래서 변화의 속도도 오히려 빠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 창업자들을 만나면서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제주, 영암, 익산, 광주에서 만난 창업자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의 고유한 자원을 정체성 삼아 브랜드를 만들고, 대기업이 아닌 자기만의 방식으로 시장을 개척해 나갔다. 이들의 창업에는 ‘규모’가 아닌 ‘진정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진정성은 고객과 지역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라고 믿는다.
물론 나 역시 실패를 겪었다. '빅마트'는 전국 7위권까지 성장했지만, 대기업의 무분별한 확장과 외부 변수로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실패를 통해 “지역과 함께하지 않는 성장은 지속될 수 없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이후에는 경영의 중심에 ‘사회적 가치’를 두고, 장애인 고용, 노인 일자리 창출, 친환경 실천 등 지역과 함께 가는 길을 실천해왔다.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진정한 관대함은 미래를 향한 희망에서 온다”고 했다. 나는 미국 포틀랜드 사례에서 그런 관대함과 희망을 보았다. 이 도시는 자치와 공동체 중심의 정책, 창업 친화적 행정이 어우러져 도시 전체가 ‘로컬 브랜드’가 되었다. 한국의 지역도 이처럼 진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단, 누군가는 먼저 걸어가야 한다. 나는 그 길을 걸어온 사람으로서, 이제는 함께 걸을 동반자를 찾고 있다.
오는 6월 28일, 『로컬의 힘, 지역경제를 바꾸다』의 출판기념 북토크를 열 예정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단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정말 지역에서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변화는 ‘지금’, ‘여기’에서 시작될 수 있다. 단, 그 변화는 혼자서는 만들 수 없다. 실패의 경험을 나누고, 서로의 조언을 듣고, 함께 걷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본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
이 아프리카 속담처럼, 이제는 로컬의 힘을 함께 키워갈 때라고 믿는다.
그 힘은 결코 약하지 않다. 다만, 그 힘이 발현되기까지 시간과 신뢰, 그리고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지금, 우리 곁에서 자라고 있는 로컬의 가능성.
나는 그 가능성을 함께 키워나갈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