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광주 > 웹진 『플광24』 > [류재준의 책 읽기] 고도를 기다리며

웹진 『플광24』


[류재준의 책 읽기] 고도를 기다리며

류재준| |댓글 0 | 조회수 84


 

희망과 부조리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 


부조리한 세상에서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이러한 나약함을 이겨내기 위해서 종교에 귀의하여 자신을 구원해 줄 메시아의 출현을 간절히 기다리곤 한다. 뭔가를 끊임없이 기다린다는 것은 인간의 또 다른 삶의 생존 방식이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희망과 절망의 두 갈래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그리고 희망과 절망은 찰나의 순간으로 다가오지만 인간은 오직 희망만을 기대하면서 다가오는 불행을 애써 모른 척 외면하면서 잊고 싶어 한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단지 실존 자체의 의미보다는 인간성 회복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타락과 잔혹함은 결국 인간성이 상실된 사회를 만들었다. 인간성이 상실된 추악한 인간의 모습 속에서 인간다움이란 말은 선과 악의 이중적인 의미로 쓰일 뿐이다. 또한 인간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하지만 타자와의 불통은 존재의 상실감만 느낄 뿐이지만 어쩔 수 없이 관계를 지속해야 한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사뮈엘 베케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일랜드를 떠나 나치에 저항하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나치를 피해 보클루즈에 숨어 살면서 곧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자신의 상황과 피난민들과 대화를 나눈 경험을 통하여 인간의 삶 속에 내재된 보편적인 기다림으로 작품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골길,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언덕 아래에는 두 방랑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50여 년 동안 고도라는 인물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들의 기다림은 아주 오래되어 이제는 고도가 누구인지, 기다리는 장소와 시간이 맞는지도 불분명하다. 계속되는 기다림에 지쳐갈 때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고도가 아니라 그의 소식을 전해주는 소년이다. 소년은 매번 고도가 오늘 밤에는 못 오고 내일은 꼭 오겠다는 말만 전할 뿐이다. 작품의 마지막까지 두 사람은 고도를 기다리면서 또한 매번 떠날 것을 다짐하지만 결국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인간의 다양한 욕망을 엿볼 수 있다. 서로 상반된 성격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주인과 노예의 관계인 포조와 럭키 그리고 전령사 소년이 등장인물이다. 블라디미르는 고도가 나타나 자신들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고도를 기다리는 이유와 인간의 모순된 모습을 그의 대사에서 엿볼 수 있다. 


“가긴 어딜 가? 오늘 밤에는 그자의 집에서 자게 될지도 모르잖아. 배불리 먹고 습기 없는 따뜻한 짚을 깔고 말이야. 그러니까 기다려볼 만하지. 안 그래?”


“남들이 괴로워하는 동안에 나는 자고 있었을까? 지금도 나는 자고 있는 걸까? 내일 잠에서 깨어나면 오늘 일을 어떻게 말하게 될지? 사람들은 서서히 늙어가고 하늘은 우리의 외침으로 가득하구나. 하지만 습관은 우리의 귀를 틀어막지.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겠지. 그리고 말하겠지. 저 친구는 잠들어 있다.” 


에스트라공은 고도에게 자신의 육체가 묶여 있다고 생각한다. 고도를 기다리는 일을 힘들어하며 블라디미르에게 매번 떠나자고 종용한다.

포조는 럭키의 주인으로 럭키 목에 끈을 매고 짐승처럼 데리고 다닌다. 나중에는 장님이 된다. 럭키는 포조의 노예로 포조의 짐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 나중에는 벙어리가 된다. 소년은 고도의 전령으로 고도가 못 온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사라진다.


이중에서 특히 포조와 럭키와의 관계를 통해서 인간이 인간을 부정하고, 럭키를 무자비하게 학대하는 모습을 통해서 부조리한 인간의 형태를 부각시키고 있다. 


고도라는 인물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작품의 끝에서도 고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는다. 세상의 온갖 부조리한 삶 속에서 고도는 또 다른 기다림과 희망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밤을 통과하지 않고 새벽을 맞이할 수 없듯이 여전히 고도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는 앙상한 나무 아래에서 고도를 기다린다.


0 댓글


카카오톡 채널 채팅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