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칼럼] 이제는 실행이다 – 한국문화기술연구원 설립을 위한 3대 제언
이제는 공감이 아닌 실행의 시간이다. 2007년부터 반복되어 온 한국문화기술연구원 설립 논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문제는 ‘필요성’이 아니라 ‘실행력’이다. 수차례 정책 보고서와 국회 토론회, 시민단체 청원과 연구자 제언을 통해 CT연구원 설립의 당위성은 이미 누적되었다. 이제는 실질적 제도 설계와 예산 구조, 운영 모델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추진체계를 가동해야 한다.
CT연구원 설립을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법제화’다. 현재 문화기술은 『문화산업진흥기본법』 제17조의5를 통해 연구기관 지정의 근거를 확보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조직 설계나 기능 배분, 협업 체계는 법률 내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 단독 주관이 아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기획재정부와 공동 추진하는 융합형 부처 협업 구조가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프랑스 IRCAM처럼 문화부 산하의 국립연구기관 형태로 독립적인 법인 지위와 정원, 운영 예산, 협력 네트워크를 확보해야 한다.
둘째, 재정적 안정성 확보가 핵심이다. 현재 문체부의 R&D 예산은 전체 정부 R&D의 0.9%에 불과하다. 문화기술 분야의 전략적 중요성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CT연구원이 장기적으로 기능을 수행하려면 최소 5년 이상 중장기 계획이 필요하며, 연 1,500억 원 이상의 기본운영비 확보가 전제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인건비, 설비비, 연구비, 인프라 유지비가 포함되어야 하며, 운영 초기 3년간은 별도 특별회계를 마련해 안정적 출범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셋째, ‘플랫폼형 조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CT는 단일 분야가 아니라 융합 기술 생태계다. 따라서 연구소는 하나의 건물이나 팀이 아니라, 오픈 네트워크로 설계되어야 한다. 광주를 거점으로 하되, 전국의 문화기술 관련 연구소, 기업, 예술 단체, 교육기관과 연계되는 ‘허브-스포크(Hub-Spoke)’ 구조로 설계해야 한다. GIST, KAIST, 서강대, 전남대 등과 연계된 공동연구 플랫폼, 창작지원 프로그램, 데이터베이스 공유 인프라가 필요하다. 또한 산업계와의 기술이전 및 공동사업 개발을 위한 R&BD 모델도 구축해야 한다.
조직 내에는 기획·제작·기술·확산 4대 기능이 통합되어야 하며,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융합형 인력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기존 공공기관 인력 충원 방식이 아닌, 프로젝트 기반 채용, 외부 전문가 영입, 글로벌 공동연구 방식이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해외의 CT 관련 연구자, 창작자, 기업가를 유치할 수 있도록 ‘글로벌 창의 펠로우십 프로그램’ 같은 제도도 필요하다.
또한 한국문화기술연구원은 단지 기술개발 기관이 아닌 ‘문화기술 정책 싱크탱크’로도 기능해야 한다. 문화산업과 기술정책을 연계하는 자문기구, 교육 커리큘럼 설계, 평가 체계 개발, 법제도 검토 등 문화기술의 총괄 컨트롤타워 역할이 수행되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이 역할을 각각의 위탁연구소나 민간 기업이 나누어 수행했지만, 그 한계는 명확하다.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가차원의 전담 기관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한국문화기술연구원 설립은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이 AI와 문화, 감성과 기술, 데이터와 창의력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질문이며, 그에 대한 제도적 응답이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논의했고, 설계했으며, 실행 조건도 마련되어 있다. 이제는 국회와 정부, 지방자치단체, 연구자, 시민사회의 총체적 실행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화기술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국가 상상력의 플랫폼’이다. 그 플랫폼을 실현할 실행기관, 바로 지금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