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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소와 소고기 음식 문화

김홍렬| |댓글 0 | 조회수 411

이 글이 게재될 무렵이면 이미 지나간 일이 되었겠지만, 5월 23일부터 25일까지 3일 동안 나주 영산강 둔치 체육공원에서는 ‘제21회 영산포 홍어 & 한우 축제’가 열린다. 홍어와 한우 대폭 할인 판매와 유명 가수 초대는 물론 저녁 시간에는 화려한 불꽃 쇼도 한다고 한다. 원래는 홍어만을 주제로 하던 축제였는데 슬그머니 한우가 끼어든 모양새다. 


< 2025 영산포 홍어·한우 축제 포스터 >


일 년이 더 지난 언젠가 나주시 원로들의 청을 받아 나주시청에 가서 시장을 만난 적이 있다. 나주 음식문화의 가치와 그것을 문화적, 경제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한 나의 의견을 들은 나주 어른들께서 좀 새로웠든지 내용을 시장에게 들려주자는 것이었다. 만남의 시간은 30분이 주어졌고 그 짧고도 불편한 자리에서 나는 나름대로 보고, 듣고, 궁리해 오던 나주 음식문화 얘기를 했다. 그중에서 특별히 강조했던 것은 나주의 소(牛)와 소고기 음식 문화에 관한 것이다.


너른 농지를 배경으로 하는 나주에서 농사일에 꼭 필요한 좋은 소가 많이 사육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어서 기록에 의하면 나주 소(羅州 牛)가 평양 소(平壤 牛), 해주소(海州 牛), 안동 소(安東 牛)와 더불어 조선을 대표하는 4대 소로 인정받았고, 나주 남평(南平) 우시장(牛市場)은 조선 5대 우시장에 들었으며, 1928년에 우수한 소, 돼지를 뽑는 축산물 품평회가 나주에서 처음 열렸다. 


<  1900년대 초의 나주 남평 우시장 >


놀라운 것은 일제강점기에 나주에 소고기 통조림공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케나카 신타로(竹中 新太郞)라는 일본인이 1934년 나주에 농산물 통조림공장을 설립하였는데, 이 공장에서 1937년부터 일본군에게 공급할 군수용 소고기 통조림을 생산하였다. 일제가 조선을 병참 기지화하려는 전략을 세우면서 총독부의 적극적인 비호하에 시작된 일이다. 하루 수백 마리의 소가 도축되어 살코기는 통조림으로 가죽과 기름 등은 군수품으로 조달되는 일은 일제 패망 시까지 계속되었다. 이 시기에 쏟아져 나온 내장과 선지 등 소 부산물이 나주 곰탕(원래는 ‘장국밥’으로 불렸다.)의 시초 또는 활성화의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알려져 있다.


다케나카 통조림공장은 해방 직후 적산(敵産)으로 몰수된 후 한국인에게 불하되어 화남산업이라는 상호를 달았다. 황도, 백도, 깻잎 통조림 등을 주력으로 생산하던 화남산업 역시 소고기 통조림을 생산하게 되는데 한국군이 월남전에 참전하면서 장병들에게 공급할 K-레이션에 김치와 함께 소고기, 돼지고기 통조림을 보내기 위해서다. 지금은 폐업한 지 오래인 화남산업 나주공장 작은 동산에는 수없이 도축 당한 소와 돼지의 혼을 위로하는 1m 크기의 위령비가 남아있다. (이 건물을 근대문화유산 등으로 보전하자는 제안도 했었는데 다행히 나주시에서 미리 인수했다고 들었다.)


나주가 가진 또 하나의 소 관련 문화 자산은 남파고택 가문(南坡故宅 家門)의 우척거래기(牛隻去來記)와 내림 소고기 음식이다. 지주가 소작농에 송아지를 사주면 소작인은 그 송아지를 잘 길러 어미 암소로 키운 후 받은 송아지는 자신들이 갖고 다 자란 어미 소를 원래 주인에게 도조(賭租)로 돌려주는 것을 우도 경영이라 하는데 남파 가문은 한때 300여 마리가 넘는 도지 소가 있었다. 이러한 내용을 꼼꼼하게 기록해 놓은 남파 가의 ‘우척거래기’는 희소성과 내용의 치밀함으로 학계에서도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종가 음식으로 잘 알려진 남파고택의 훌륭한 내림 음식 중에서도 소고기 음식은 탁월하다. 30여 종에 이르는 소고기 음식의 다양성은 물론 부산물이 아닌 정육을 주로 쓰는 음식의 품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심지어 궁중 음식 기록에도 나타나지 않는 소고기 음식이 두 가지나 전해지고 있어 남파 가문 하나만으로도 전국 어느 지역의 소와 소고기 음식 이야기를 능가할 정도다. 


< 남파고택의 우도기 ‘우척거래기’ >


이렇게 다양한 소와 소고기 음식 관련 문화유산을 보유한 나주시이니만큼 이들을 활용하여 문화적, 경제적 성과를 얻는 정책이 필요함을 설명하고, 그 대표적인 실행안으로 가칭 ‘나주 소 · 소고기 음식 축제’를 제안하였다. 나주에는 이미 전라도 음식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영산포 홍어 축제’가 있으나 홍어 음식은 호불호가 큰 음식이어서 필자가 서울에서 인솔해 데려간 ‘남도 음식문화 투어’ 참가자들의 경우 그중 30% 정도만이 홍어 음식을 먹을 수 있었을 정도인 데 반해, 소고기 음식의 경우 남녀노소는 물론 어느 나라 사람이나 다 좋아하므로 시장의 규모가 훨씬 크기 때문에 소고기 축제가 나주시에 가져다줄 경제적 성과는 홍어 축제의 몇 배에 달할 것은 물론 지역 이미지 제고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제안의 골자였다. 거기에 잘 조성된 영산강 둑길을 달리는 아마추어 자전거대회나 마라톤 또는 걷기대회를 병행하고 영산강 변에 다양한 형태의 캠프장을 조성한다면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 것이라는 아이디어는 덤이었다. 

 

조선 4대 명우인 나주 소, 남평 우시장, 소고기 통조림공장, 오래된 도축장 거기에 나주 곰탕이 더해지고 남파고택의 내림 소고기 음식과 우도기 등 스토리를 더해 ‘나주 소, 소고기 음식 축제’를 개최한다면 홍어 축제에 이은 천년 고도 나주의 또 다른 음식 축제로서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때의 제안에는 감감무소식이더니 뜬금없이 올해 ‘홍어 축제’에 슬그머니 ‘한우’를 더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나의 아이디어를 참조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제대로 하기보다는 남의 잔치에 숟가락 하나 얹어 놓는 얄팍한 시도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쨌거나 기왕에 시작한 축제이니 나주와 소 그리고 소고기 음식에 관한 여러 가지 깨달음을 얻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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