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MY WAY 나의 산티아고
<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 >
이 길이 옳은지 다른 길로 가야 할지
난 저길 저 끝에 다 다르면 멈추겠지
끝이라며 가로막힌 미로 앞에 서 있어
내 길을 물어도 대답 없는 메아리
어제와 똑같은 이 길에 머물지 몰라
저 거미줄 끝에 꼭 매달린 것처럼
갈 길을 잃은 나를 찾아야만 해
긴 벽에 갇힌 나의 길을 찾아야만 하겠지
가르쳐줘 내 가려진 두려움
이 길이 끝나면 다른 길이 있는지
두 발에 뒤엉킨 이 매듭 끝을 풀기엔
내 무뎌진 손이 더 아프게 조여와 _ 시그널 OST 김윤아 노래 “길”
고대인들은 낯선 땅을 향해 떠날 때, 하늘에 그려진 북두칠성을 따라 북극성을 찾고 그 별을 나침반 삼아 자신들의 삶의 자리를 정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해 나아가야 하나?
2016년 9월 30일, 나의 북극성을 찾아 마침내 스페인 ‘까미노’ 길의 시작점에 섰다.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부 Compostela 대성당까지 약 800km를 걷는 세계적인 성지 순례길이다.
유럽에서 산티아고 꼼포스텔라로 향하는 길은 몇 갈래 길이 있다. 그중 프랑스 길은 생장에서 출발해 스페인 꼼포스텔라까지 이어지고, 북쪽 길은 스페인 북부 해안을 따라가며 조용하고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포르투갈길은 리스본이나 포르투에서 시작하며, 바다를 품은 아름다운 풍광 덕분에 특히 인기가 많다.
내륙 길은 가장 오래된 정통 순례길로, 오비에도에서 출발해 꼼포스텔라로 향한다. 길은 달라도 마침내 모두 산티아고데 꼼포스텔라에서 만난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삶의 길은 곡선일 수도, 직선일 수도 있고, 험할 수도, 평범할 수도 있지만 결국 태어나고 자라고 병들고 늙으면 죽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것처럼!
나는 가장 보편적이며 초보자에게도 추천되는 루트인 프랑스길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생장에 있는 순례자 사무실에서 ‘순례자 수첩(크레덴샬)’과 조개껍데기를 받는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얼마 만에 느끼는 이 흥분과 설렘인가!
생장마을은 순례자들로 북적였다. 제법 분주하고 생기 넘치는 모습이, 순례자들의 성스러운 마음만큼이나 오래된 풍경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저녁 식사를 하러 들른 식당에서는 젊은 한국 여성들과 합석했다. 그들은 친구 사이로, 약 2주간 순례길을 걷는다고 했다. 피자와 맥주를 나누며 순례 전날 밤의 흥분을 만끽했다. 깔깔 호호 웃고 떠들며, 무엇 때문에 그렇게 웃었는지, 왜 순례길을 걷는지 이야기를 나눴지만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순간의 풍경만큼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마치 어제 일처럼.
2016년 10월 1일, 새벽 5시.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는 이미 소란스러웠다. 첫날, 첫 걸음. 기대와 설렘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밀려오는 법. 출발에 앞서, 순례자들은 생장 성당에 들어가 기도를 올렸다. 무사히 길을 걷고, 자신이 세운 목표를 이룰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 기도하는 내 모습조차 경건하고도 경탄스러웠다. 외국인들 틈에서,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나는 마침내 순례길에 올랐다.
새벽 공기는 파란 숨결처럼 내뱉어졌다.
제법 단련된 걸음이라고 여겼지만, 시작부터 가파른 길이 이어졌다.
성큼성큼 앞서가는 외국인 순례자들은 마치 용병 같았다.
“오메~ 징허니 잘 걷는그이~”
함께 걷던 한국인 친구들이 하나둘 뒤처지기 시작했다. 나는 제법 폼을 잡고 올라가고 있었기에 애써 끙끙 용을 쓰며 계속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걸음이 하늘을 나는 듯 가벼워졌다. 뒤를 돌아보니, 잘생긴 젊은 청년이 씨익 웃고 있었다.
‘오메에~ 먼 일이랴? 나한테 반했나?’ 할 새도 없이
“Hola~”
키가 훤칠한 스페인 남자가 바짝 붙어 있었다
“Cheer up~”
그의 한 손은 나를 향해 흔들고, 다른 한 손은 내 배낭에 밀착해 밀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용모에 반할 사이도 없이 이내 곧 “Buen Camino”라고 말한 뒤, 100미터쯤 나를 밀어주고는 성큼성큼 앞서 걸어가 버렸다.
뒤따라 나설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까웠지만,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다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이래서 프랑스길 첫 코스인 피레네산맥을 패스하겠구나!”
아침 안개가 걷히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고지가 높아 바람이 제법 강했지만, 10월의 첫날인 만큼 땀 식히기엔 딱 좋았다.
양떼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 순간을 놓칠 수는 없지!
알잖아, 한국인의 인증샷 문화~ 하하하.
생장에서 피레네산맥 중간 지점에 있는 오리손 휴게소에 도착했다.
피레네산맥 1400미터, 시간상으로 8시간 이상 소요되는 구간의 2/5 지점쯤 된다
헉헉대며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어디선가 “Hola, Buen Camino!”
세상에! 그 잘생긴 남자가 나를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는, 발길이 그를 향했다.
그가 앉은 테이블에는 대여섯 명이 함께 있었고, 서로 인사를 나누니 그들은 스페인 사람들로, 가족 관계, 여동생, 삼촌, 친구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니 엄청 반가워했다.(오메~ 외국 필 좀 나잖아, 내가! 크크)
그들은 한국을 좋아한다고 했고, 나는 스페인어를 전혀 몰랐지만 엉성한 영어로 소통하며 금세 친구가 되었다.
지금은 함께 걷지만, 각자의 순례 일정은 달랐다.
삼촌과 이모는 주말까지만, 여동생과 친구는 일주일 일정이라고 했다. 스페인 사람과 한국 사람의 기질이 비슷한가 보다.
사람 좋아하고, 외국인에게 친절하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몇 분 사이에 우리는 웃고 떠들며 어울렸고,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헤이 친구들, 오늘 10월 1일이 내 딸 생일인데, 너희가 생일 노래를 불러주면 그 영상을 딸에게 보내주면 정말 특별한 선물 최고의 선물이 될 거야 불러주겠니?.”
그들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거리낌 없이 “Happy Birthday”를 합창해 주었다.
정말,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생일 선물 아닌가!
그들과 다시 길을 걸었지만, 곧 나는 뒤처졌다.
피레네산맥의 산등성이, 그 정상에 마침내 올랐다.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풀밭에 대자로 누웠다.
흘러가는 구름,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그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물이 났다.
생각해 보니, 안식년 동안 내가 가장 자주 경험한 감정은 ‘벅참’과 ‘즐거움’이었다.
그 이후로 흐르는 눈물은 정화의 눈물, 카타르시스, 마치 정화수 같았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기뻐서, 감동해서, 아름다워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흘러넘친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느낄 수 있다면,
이 길은 내가 가는 길,
그리고 내가 가야만 하는 길인 것이다.
나는 지금 비로소 자유롭다.
The Way. My Way. My Santi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