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칼럼] 왜 우리는 아직도 한국문화기술연구원이 없는가?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문화기술연구원'의 설립을 공식 지시한 이후 지금까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전략 기술로 지정된 6T 중 유일하게 CT(Culture Technology)만이 독립 국책 연구기관 없이 방치되고 있는 현실은 대한민국이 '문화강국'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문화기술을 국가의 핵심 역량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방증한다.
문화기술은 김대중 정부 시절 '신지식인 양성'과 함께 전략기술로 성장했으며, 노무현 정부하에서 국책연구원 설립의 추진력이 본격화되었다. 당시 광주 아시아문화 중심도시 종합계획 속에 포함된 CT연구원 설립은 대통령의 구두 지시와 함께 국비 1,200억 원 규모의 건립안으로 구체화되었다. 2008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세계 5대 콘텐츠 강국 도약'을 위한 핵심 기관으로 제안했으며, 국회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관련 법안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하에서 '국책 연구기관 구조조정' 기조가 강화되면서 예비타당성 조사조차 거치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는 CT가 국정과제로 다시 떠올랐지만,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유사기관 간 기능 중복 논란이 일며 독립 연구기관 설립에는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문재인 정부 역시 광주 공약에 CT연구원 설립을 명시했지만, 문체부와 기재부 간 조율 실패로 예산 확보와 법적 근거 마련에 실패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구체적 추진 계획은 전혀 없었다.
CT연구원 설립이 좌초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정권교체마다 정책의지가 계승되지 않았다. 정부 주도 국책사업의 연속성이 부재했고, 예산 편성 주체가 부처 간 이견으로 갈등을 빚었다. 둘째, 주무부처인 문체부와 과기정통부 간 협력 부재로 정책 이행체계가 불안정했다. 문체부는 CT를 예술·문화 영역으로, 과기정통부는 IT의 파생영역으로 간주하면서 실질적 예산·조직 주도권 다툼이 지속되었다.
셋째, 예비타당성 조사와 입법 과정에서 정치적 동력이 분산되었다. 2013년 CT연구원 설립 근거가 되는 '문화산업진흥기본법 제17조의5'가 국회에서 통과되었지만, 법안 통과 이후 후속 법령과 예산이 미비하였다. 2017년 다시 입법이 추진되었으나, 국회 계류 중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되며 좌절되었다. 이러한 반복적 지연은 결국 연구자와 현장 전문가들에게 피로감을 안겨주었고, CT 관련 인력의 해외 유출이나 산업 외 전환이라는 부작용도 낳았다.
그러나 2025년 현재, 한국은 디지털 실감 기술과 인공지능 기반 창작, 감성 인터페이스 기술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에 도달해 있으며, 이를 콘텐츠와 융합하는 CT의 전략적 가치도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광주를 중심으로 한 CT 생태계는 CGI센터, 광주문화전당, GIST 문화기술연구소, 지역대학 CT 전공과정 등에서 축적된 역량이 이미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국내외 문화산업의 패러다임도 기술 융합 기반으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게임, 전시, 전통예술, 교육 분야까지 CT의 접점은 확대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단발성 프로젝트 중심의 연구 방식에서 벗어나 장기적 비전과 국가 주도의 안정된 CT연구 체계 구축이 절실하다.
결국 CT연구원 설립은 단지 하나의 국책기관 설립을 넘는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문화와 기술의 융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국가 미래 전략에서 창의성과 감성, 예술과 인공지능을 어떻게 통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시험대이기도 하다. 더 이상의 지체는 '시대의 역행'이다. 이제는 한국문화기술연구원의 설립을 국가적 아젠다로 재정립하고, 법적 근거, 재정 확보, 행정 추진체계까지 전면적 개편을 통해 실행력을 확보해야 한다.
문화기술은 미래를 상상하는 힘이며, CT연구원은 그 상상을 실현할 실험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