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광주 최초를 찾아라] 광주최초의 시계점
1960년대 토끼풀 손목시계 놀이가 떠오른다. 인구폭증 시절이었다. 학동이 많고, 교실은 부족하여 오전·후반 2부제 수업이 이뤄졌다. 집집마다 시계가 없던 때, 비·흐린 날이면 등교 시간을 잴 수 없어 오후반이어도 아침에 가서 기다린 적이 있다.
년·달력·계절·절기·주야·24시 60분, 물·해시계, 14세기 기계식 시계, 1704년 두 개 바늘시계...
오늘날과 같은 손목시계는 1868년 스위스에서 생산했단다.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 오리엔트 조립시계, 1981년 방수시계를 처음 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건강체크, 스마트워치가 대세다.
지난해 발간 2023년 말 기준 광주사업체 조사보고서에 광주지역 시계제조업체는 없다. 소매점으로 392업체에 612(남256,여356)인이 종사하고 있다.(단독 369소534인, 공장지사 21소73인, 본사본점2소 5인)
광주 최초 시계점은 1917년에 발행된 광주지방사정에 따른다. 시계상으로 북문통 다가와(田川), 후지모토(藤本), 호리(堀), 서문통 도오가이(鶆餇), 남문통 다께이(竹井)가 적혀있다. 충장로2가 토지이력서를 본다. 1912년 9번지 36평 소유자가 굴주일(堀周一)이다. 등본(藤本)은 3번지에 주소를 두고, 1924년 26번지 29평 주인이 된다.
1932년 전화번호부에 충장로1가 산협(山脇)시계점, 충장로2가 등본(시계·안경·만년필)이 기록돼 있다. 1935년 12월 8일 지상 보도에 충장로5가 지형렬 시계점 화재 소식이 검색된다. 광복 이후는 광주민보 1945년 12월 15일 광고란에 세신당(世信堂) 시계점(충장로4가45번지)이 실려있다. 공업신문 1946·47년을 살피니 고려(高麗박동술) 시계상회·기열(己烈최기열) 시계점이 충장로에 위치했다. 1949년 동광신문에도 남동71번지(도립병원앞)에 광주시계포(김성환)가 있다.
1956년 전남상공명감에서 시계가게를 나열한다(안경겸업眼). 충장로1가10번지 천보당(김지선眼), 2가15번지 한양시계점(박한양眼), 26번지 고려시계상회(박동술), 4가41번지 대신당(천태규)·광명당(양상승眼), 46번지 대성당(김조창眼), 48번지 일신당(백낙권眼), 진오사(조형주), 5가29번지 보신당(손성진), 84번지 금상당시계점(임원룡), 89번지 양성시계점(노정용), 광산동 산양시계점(이상구眼).
1975년 전남상공명감에 수록된 16개를 소개한다. 충장로1가5번지 신광당(신동국), 4가3번지 표준사(최일성), 4-7번지 일진사(윤영식), 10번지 성명당(박전성), 27번지 세이코센터(김상술)·시티즌센터(김용갑)·전광시계센터(이관모), 41번지 광명당(양상승), 5가47번지 일신당(박두영), 48번지 대광당(최영관), 52번지 광명시계센터(양동균), 57번지 광화당(양인석), 58번지 정신당(염상현), 153-2번지 오리엔트시계판매점(황금천), 금남로3가1번지 삼성당(손성진), 사동90-7번지 시티즌상사(곽종일).
지역(공간)연구 지리학에서 때(시간)도 한 꾸러미다. 이기봉은 2007년 지리학교실 첫 장에 ‘시간과 지리’를 썼다. 한 개인이 각 시간대에 ‘무엇을 했는지’ 보다 각 시간대에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가 그 사람을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해 12월 3일 대통령 비상계엄선포, 국회표결로 무산, 내란수괴 구속, 지귀연 시간산정 석방, 헌재 전원일치 윤석열파면 선고, 21대 대선일자 확정, 조희대 대법원 전격 전원합의체회부... 촌각(寸刻)다툼! 대한민국 시공(時空) 현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