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함께하는 창업, 왜 그리고 어떻게
창업을 준비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제품 개발, 자금 확보, 마케팅 전략 등에 집중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누구를 위한 사업인가,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의 답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 안에 있다.
지역사회와 연계된 창업은 단순히 ‘지역에서 시작하는 창업’이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그것은 지역 안의 사람들과 문제를 공유하고, 자원을 함께 활용하며, 함께 성장해 나가는 지속 가능한 창업의 방향이다.
그렇다면 창업자는 지역사회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지역의 문제를 바라보는 일이다.
창업은 결국 문제 해결의 과정이고, 지역은 수많은 문제와 가능성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농촌의 고령화, 도시의 빈 점포, 쓰레기 문제, 관광객 편의 부족, 청년들의 일자리 부재 등은 모두 하나의 사업 아이템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충남의 한 청년 창업자는 어촌 마을에서 버려지는 굴껍질을 활용해 친환경 인테리어 자재를 개발했다. ‘버려지는 자원’이 ‘팔리는 제품’이 된 것이다.
문제를 찾았다면, 지역의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 창업을 위한 가장 값진 정보는 때때로 동네 슈퍼 주인이나 마을 어르신에게서 나온다. 이들이야말로 누구보다 지역을 잘 알고 있으며, 그들의 이야기는 창업 아이템에 현실성과 생명력을 더해준다. “이 동네에는 어떤 가게가 필요하세요?”, “요즘 손님들이 어떤 걸 자주 찾으시나요?”라는 단순한 질문만으로도 사업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이후에는 지역의 기관과 단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자.
창업 초기에는 자본도 부족하고, 인력도 없고, 공간도 마땅치 않다. 이때 지자체, 창조경제혁신센터 등 창업지원센터, 청년센터,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등은 매우 소중한 파트너가 된다.
특히 광주에서는 ‘실증도시 광주’라는 이름으로 스타트업의 기술을 실제 도시공간에서 시험하고 검증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이 사업은 광주시와 혁신기관들이 협력해 도시 전체를 하나의 테스트베드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에너지, 스마트헬스, AI 등 첨단 기술을 보유한 창업기업들이 실제 도심 내 공공시설, 생활환경, 인프라 속에서 자사 제품을 실험하고 피드백을 받는 기회를 얻고 있다.
이는 단지 기술 실증에 그치지 않고, 지역 문제 해결형 창업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광주의 한 기술 기반 스타트업은 도심 속 어린이 보행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 기반 교통 모니터링 시스템을 설치했고, 이 과정에서 실증도시 광주의 지원을 받았다. 그 결과, 창업기업은 사업 타당성을 확보하고 전국 지자체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예비 창업자들이 주목할 또 하나의 지역 자원이 있다.
바로 ‘광주빛고을노인타운’이다.
이곳은 광주지역 어르신들의 복지와 여가, 돌봄, 커뮤니티 기능을 갖춘 복합공간으로, 고령 친화 서비스나 제품을 개발하려는 창업자에게는 귀중한 실증 기회이자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디지털 문해교육 스타트업은 노인타운을 거점으로 실버 세대 대상 스마트폰 활용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
헬스케어 기반 스타트업은 어르신 대상 건강 모니터링, 낙상 예방 센서, 맞춤형 운동 콘텐츠 등을 실험하고 피드백 받을 수 있다.
문화 콘텐츠 기업은 지역 예술가와 함께 실버 세대를 위한 ‘마음 회복 프로그램’이나 ‘디지털 추억 앨범 제작 서비스’ 등을 기획할 수 있다.
이러한 협업은 단순한 사업 기회를 넘어, 지역의 고령화 문제 해결과 고령 친화 도시 구현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함께 실현하는 과정이 된다.
실제로 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 사회에서 이런 모델은 정책적으로도 크게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지역과 연계된 창업의 문화는 해외에서도 확산되고 있으며,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는 미국 콜로라도 주의 볼더시(Boulder, CO)를 들 수 있다.
볼더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성공 도시로 자주 언급되는데, 그 중심에는 ‘기브퍼스트(Give First)’라는 지역 창업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기브퍼스트’란 먼저 도움을 주고, 나중에 관계를 기대하라는 가치다. 볼더에서는 경험 많은 창업가나 투자자들이 예비 창업자에게 멘토링, 네트워킹, 실질적 조언을 아낌없이 제공한다.
이 문화는 지역 창업 커뮤니티에 선순환의 신뢰 구조를 만들었고, 볼더를 미국에서 가장 협력적인 창업 도시 중 하나로 성장시켰다.
이 철학은 우리 지역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광주에는 필자가 운영 중인 ‘원팀프로젝트(One Team Project)’는 지역 창업자, 창업투자자, 공공기관,엔젤투자자 등이 ‘우리는 모두 원 팀‘이라는 슬로건의 모임이 있으며 ’기브퍼스트 철학‘과 맥을 같이하며, 광주 창업생태계를 신뢰 기반의 공동 실천 공동체로 만들어가고 있다.
창업 아이템에 지역의 고유한 자원과 스토리를 담는 것도 중요하다. ‘우무솝’이라는 브랜드는 제주도의 우뭇가사리를 활용한 비건 비누를 만들고 있다.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지역의 농가 등과 함께 환경 문제에 공감하며 협업한 결과다.
지역의 특산물, 역사, 문화, 지형, 사람들까지도 모두 브랜드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꼭 권하고 싶은 것은, 함께할 사람들을 찾는 일이다. 혼자 하는 창업은 외롭고 버겁다. 지역에는 이미 활동 중인 로컬 크리에이터, 사회적경제 창업자, 청년 창업가들이 많다.
이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협업의 기회를 만들고, 때로는 실패담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창업의 지속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SNS나 로컬 페스티벌, 창업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걷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지역과 연결된 창업은 느리지만 단단하다.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아닐 수 있지만, 신뢰와 관계 위에서 성장하는 브랜드는 그만큼 오래 지속된다. 그리고 그 창업은 단순한 ‘나의 성공’이 아니라, 지역과 함께 웃는 성공이 된다.
지금 발 딛고 있는 지역을 다시 바라보자. 당신의 창업이 지역사회와 함께할 때, 그 여정은 더 깊어지고 단단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