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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성의 사회, 침묵하는 정의

류재준| |댓글 0 | 조회수 100

이중성의 사회, 침묵하는 정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인홀드 니버 지음/이한우 옮김/문예출판사


도덕적인 개인이 모인 사회가 반드시 도덕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하고 정의로운데 사회는 왜 타락하는가? 겉으로는 정의를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량한 개인들이 모여 만들어낸 사회가 때론 비도덕의 전시장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우리는 이 모순과 불합리 속에 살고 있다. 


과거 무릎 꿇은 장애인 학부모들의 호소를 보면서 사회가 얼마나 손쉽게 약자를 외면하는지를 보여준다. 누구나 복지와 포용을 말하지만, 그런 시설이 자기 동네에 들어오면 태도가 달라진다. 집값이 떨어질까 우려하며, ‘혐오시설’이라 낙인을 찍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 공동선을 외치는 이들이 공동의 이익 앞에서 가장 먼저 등을 돌리는 현실이다. 이것이 바로 집단의 이기심이 개인의 양심을 압도하는 구조다.


특권층은 더 교묘하다.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권력을 사유화하고 책임을 회피한다. 유체이탈 화법으로 불의를 정당화하고, 국민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자신의 영달을 꾀한다. 그들에게는 죄의식은 없다. 자신이 곧 국가요, 정의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라인홀드 니버는 1932년 출간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이 모순을 꿰뚫는다. 그는 “개인은 도덕적일 수 있어도, 집단은 그렇지 않다.” 니버에 따르면, 사회의 각 계층은 보편적 가치를 위한 투쟁이 아니라 철저히 자기 계급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공동체 속에서 정의는 언제나 이익이라는 이름에 밀려난다. 그는 개인의 윤리로는 집단의 악을 막을 수 없으며, 이를 제어할 수 있는 강제적 사회 구조가 필요하다고 경고 한다.



선한 사림들의 침묵이 모이면, 사회는 언제든 악을 정당화 한다.


그는 서문에서 집단의 본질을 이렇게 정의한다. “모든 인간 집단은 충동을 억제할 이성과 자기 극복 능력이 부족하며, 관계 속에서의 도덕성을 집단이라는 틀 안에선 더 심각하게 상실한다.” 이 말은 단지 과거의 철학적 경고가 아니라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개인의 양심’과 ‘사회적 요구’ 사이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아무리 올곧은 사람도, 조직의 일원이 되는 순간 ‘야누스의 얼굴’을 갖게 된다. 정직한 사람들도 조직의 논리에 휩쓸려 정의를 외면하고, 부정에 침묵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이처럼 사회 속에서 개인의 자유 의지는 약화되고, 집단은 정당한 명분 아래 타인을 억압한다. 국가의 이름으로 정의를 희생시키고, 평화라는 명목 아래 전쟁을 일으키는 것처럼 말이다. 강한 자가 질서를 만들고, 약한 자는 그 안에서 침묵을 강요당한다. 국제 사회도 다르지 않다. 힘 있는 국가들이 세계의 규칙을 정하고, 약소국은 언제든 평화를 빼앗길 위기에 놓인다.


니버는 “도덕의 문제가 개인의 차원에서 집단으로 옮겨가는 순간, 이기적 충동은 더욱 강해지고, 아무리 강한 내면의 윤리라도 이를 제어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사회적 억제는 필수이며, 이는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단호히 말한다.


그동안 나는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개인으로 마주한 그들은 대부분 따뜻하고 정직했다. 그러나 그들이 집단의 일원이 되는 순간, 놀랍도록 달라지는 것을 보았다. 정의보다는 순응을 택하고, 침묵 속에 동조한다. 조직의 이익 앞에선 양심조차 사치가 된다.


우리는 지금 인격적·도덕적 이상주의가 ‘위선’이라 비난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개인의 도덕이 조롱받고, 사회적 불의에 눈감는 것이 생존의 방식이 되어버린 요즘이다. 니버의 말처럼 우리는 이제 개인으로 만족을 추구할 수 없는 시대에 들어섰다. 사회가 비도덕적인 이유는, 결국 우리가 그 사회 속에서 침묵하기 때문이다.


이제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나는 어떤 집단에 속하더라도, 내 양심을 지킬 수 있는가?”, “나는 사회 속에서 윤리적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우리가 도덕적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반드시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물음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사회를 바꿀 힘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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