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PD의 불펀(Fun)한 생각] ep.2 옐로 스피릿을 아십니까?
극우단체의 소란으로 시끌벅적했던 지난 토요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선 광주FC와 수원FC의 2025 K리그 개막전이 열렸다. ‘광주축구전용구장’으로 옮긴 지 5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와 치른 첫 경기였다. 평년보다 이른 개막에 다소 어수선했지만, 장내외는 활기가 넘쳤고, 들뜬 팬들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들어섰다. 약 5,000명이 운집한 가운데, 두 팀은 90분간 공방전을 펼쳤지만 0대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올 시즌 광주FC는 재정난으로 인해 유망한 프랜차이즈 선수들을 대거 타 팀으로 이적시켰다. 지난 시즌과 비교해 스타팅 멤버 11명 중 9명이 바뀌었다. 하지만, 팬들은 내심 이정효 감독이 뭔가 수를 낼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감독 데뷔 시즌에 험난한 압도적 성적으로 1부로 승격시키고, 이듬해 리그 3위를 일궈내면서 아시아 무대에서도 한국 팀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냈으니 그럴 법도 하다.
꿀잼 콘텐츠의 성지, 축구장
설령,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쉽게 등 돌릴 팬들은 많진 않다. 경기장 관람 문화를 살펴보면 이를 금세 이해할 수 있다. 일단 경기 시작 전, SNS 채널에는 블록코어(축구 유니폼을 일상복처럼 입는 패션)룩을 자랑하는 팬들의 사진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다음은 서포터스의 응원가에 맞춰 응원하는 영상과 특별했던 한순간을 기록으로 남긴 직캠 영상이 뒤를 잇는다. 구단 채널에서는 웬만한 방송국에 버금가는 영상과 이미지들의 성찬이 시작된다.
라인업을 소개하는 영상, 비하인드 스토리, 득점 장면 등등으로 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여기에 서포터스 문화가 곁들어진다. 빛고을 서포터스는 자체 브랜딩 팀이 있어서 감각적인 굿즈를 제작하고, 매 경기 의미를 담은 펼침막을 내건다. 개막전에는 최근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K리그 팬 하늘 양을 그리는 “하늘아 예쁜 별로 가”라는 걸개가 걸렸다.
지난 ACLE 첫 경기에서는 5.18 국립 묘지 추모 탑을 형상화한 대형 광주 통천 퍼포먼스를 보여줘 찬사를 받았다. 인기 그룹 ‘노라조’의 보컬 조빈 씨가 주축이 돼 응원가를 새로 발표하고, 콜 리더의 구호에 맞춰 각양각색의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단돈 2만 원으로 즐기는 미니 콘서트라고 하면 믿으시려나.
경기장 안팎 다채로운 이벤트도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문화재단과 협업한 수준 높은 공연이 매 경기 열리고, 관광공사가 나눠주는 관광 기념품도 받을 수 있다. 지난해에는 ‘광주경제진흥상생일자리재단’과 함께 유망한 지역 소상공인의 음식으로 구성된 도시락을 나눠주기도 했다. 이렇듯 ‘시민구단의 축구는 90분에 끝나선 안 된다’는 철학이 정착되면서, 축구 경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지역 축제가 됐다.
시민 5,000명 이상이 즐기는 축제가 매년 20회 이상 열리는 셈이다. 올해에는 ‘야구 도시 광주에서 축구가 인기를 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늘 고민하는 이정효 감독이 파격적인 공약을 내걸었다. 평균 관중 7,000명이 넘으면 캐스퍼 1대를 팬들에게 내놓겠다는 것이다. 또한, 대구와의 달빛 더비, 천적 포항/전북과의 복수 혈전, 광주 유망주들을 대거 영입한 울산과의 자존심 대결은 그 자체로 이미 전쟁이다.
축구 그 이상의 가치
이처럼 축구가 로컬 콘텐츠 플랫폼으로 진화하면서 지역 사회와의 다양한 접점이 생기고 있다. 일례로, 영국, 독일, 스페인, 일본 등 축구 선진국에선 유명 축구 선수들이 자살, 마약, 폭력 등 청소년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다양한 캠페인 활동을 전개한다. 영국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중장년을 위한 운동 프로그램을 보급하기도 한다. 장애인, 이민자, 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는 축구 이벤트도 수시로 열린다. 일본의 경우, 지역 구단이 소상공인, 관광 상품과 연계한 상생 마케팅을 펼친다. 지역과 초밀착된 구단 운영을 통해서 ‘축구 그 이상의 가치’를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광주FC는 각종 비리 의혹들로 홍역을 치렀다. 논두렁 잔디 논란 등 부실한 인프라로 비난을 샀고, 팬 서비스도 낙제점을 받았다. 다행히 이정효 감독 부임 이후 팬들의 관심이 부쩍 커지면서 잘못을 바로 잡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야구보다 축구를 낯설어하는 분들이 많다.
국대 선수도 없고, 축구 룰도 모르는데 무슨 재미로 보느냐는 말씀들도 많이 하신다. 그런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콘텐츠가 있다. 쿠팡플레이에서 이번 주부터 업로드되는 “2024 옐로 스피릿”이라는 시즌 다큐멘터리다. 없는 살림에 안간힘 쓰는 선수단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예전 해태 타이거즈도 생각나고 현실의 나와 동일시되고 막 그렇다. 내가 기획, 연출한 작품이라서 홍보하는 건..아닌 게 아니라..사실..맞다..;;
더 많은 분들에게 축구장에서 느꼈던 그 느낌 그대로를 공유하고 싶다. 극우단체가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을 광주만의 끈끈함과 뜨거움 같은 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