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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플광24』


카르페디엠

이당금| |댓글 0 | 조회수 95


Wherever you go,

whatever you do.

you will find suffering sooner or later.

usually sooner.

if you have not awakened to the depth dimension the being.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너는 언젠가는 고통을 만나게 될 것이다.

대게는 훨씬 더 빨리 만나게 될 것이다.

만약 네가 존재의 깊은 차원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면  (에크하르트 톨레의 강연 중에서)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는 이른 새벽,

모닝커피를 위해 물을 끓이며 라디오 볼륨을 올린다.

커피 향이 미미하게 피어오른다. 마치 새벽에 피어나는 꽃송이처럼,

천천히,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그때 귓전으로 한목소리가 흘러든다.

깊은 우물 속으로 물방울이 한 방울 또 한 방울 떨어지는 소리처럼,

또옥, 똑 또오오, 또르르르르...

그 소리는 수면위에 작은 파장을 일으키며 내게 닿는다.

오래전, 아주 먼 곳에서 밀려오는 파도처럼 내 안에 스며든다.


고통은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존재의 깊은 차원에 깨어날 때 우리는 고통에 휩쓸리는 사람이 아니라 고통을 바라보는 사람이 된다.


“너는 평생 안 아플 줄 알았다.”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어쩌면 나 역시 그렇게 믿으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 아파도 금세 일어나는 사람, 몸의 신호를 오래 외면해도 결국은 버텨내는 사람처럼 살아왔다.


평생 아프지 않을 것 같았던 내가 뇌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 이후 내가 감각한 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 몸과 정신이 알고 있었던, 아주 보통의 감각이었다. 나는 생각보다 빨리 그 보통의 감각으로 되돌아왔다.


뇌종양 진단은 두려움이었고, 수술은 고통이었다. 머리를 열고 종양을 제거한다는 말은, 경험하기 전에는 그 자체로 죽음 가까이에 놓인 문장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나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변함없다. 그런데 그 변함없음이 낯설다. 생경하다. 그래서 나는 조금 혼란스럽다. 그 낯섦은 회복의 기쁨도 아니고, 생존의 안도감도 아니다. 오히려 깊은 우물 속으로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방울 같았다.


또옥, 하고 떨어져 어두운 수면 위에 작은 파장을 만드는 소리. 아주 작지만, 이상하게 오래 번지는 감각.

수술 전의 나와 수술 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할 것만 같았지만 나는 여전히 나였다.


큰일을 겪었는데, 나는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은 것이 감사해야 할 일인데, 이상하게 낯설다.

왜 나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그 변함없음의 낯섦을 들여다보던 순간, 나는 오래전 위파사나 명상홀에서 경험했던 감각을 떠올렸다.


위파사나 Silence 침묵 명상은 나에게서 생성되는 고통, 감각, 생각, 감정이 어떻게 일어나고 사라지는지를 오직 침묵 속에서 관찰하는 명상이다.


오직 나에게 집중하며 판단하지 않으며 남을 의식하지 않아야 한다. 첫 경험이 주는 호기심은 반나절도 안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호흡을 관찰하고 집중하며 머리끝에서 발끝가지 몸 전체의 감각을 관찰한다.


저림, 통증, 가려움, 압박감, 무감각이 올라오면 그것을 좋다거나 싫다고 판단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이다. 아프다. 힘들다. 때려치고 싶다, 탈출하고 싶다, 말하고 싶다. 몸과 마음이 반란을 일으켰다.


양쪽 발을 꼬아 앉아 허리를 세우고 눈을 감고 있는데 꽈배기처럼 꼬아 드는 감각은 몸속의 작은 세포들까지 들쑤시며 온몸을 뒤틀리게 했다. 그 와중에도 졸음은 쏟아졌다. 이중삼중의 통증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 그 자체였다.



신음소리와 동반하며 꼬아져 다리를 풀기를 수십번씩 반복하면서 통증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관건은 생각이었다. 

통증은 생각이다. 생각이 없으면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생각이 통증을 일으킨다


분별하지 말고 그저 생각을 지켜보아라!

위파사나 명상을 통해 고통이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변하고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바라보게 했다. 

통증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통증 자체가 아니라 그 통증을 밀어내려는 마음이라는 것을 

순간 깨달았다.  


무심, 무상! 


명상하는 과정에서 깨달았던 것들이 삶으로 적용되었던 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여전히 나는 내 삶을 들여다보지 않았고, 남을 판단하고 내 삶의 기준을 세우고 잣대를 들이대며 허우적거렸다. 

큰 수술을 경험하였으니 내 삶이 스펙타클하게 바뀌어야만 의미가 생긴다는 생각은 어디서부터 올라온 것일까?


수술 이후 나는 별반 다른 사람으로 변하지 않았다. 

명상 이전과 이후의 삶이 극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듯이, 수술 이전과 이후의 삶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나였다.

아침에 눈을 뜨고, 커피를 내리고, 사람을 만나고, 일을 계획하고, 연극을 하며, 고양이 집사이며, SNS로 남의 삶을 염탐하고, 내 삶을 빗대어본다. 

다른 상황에 흔들리고, 부러워하며, 닮고 싶어 하기도 한다. 

앞으로도 여전할 것이다. 


별반 다르지 않은 여전함 속에서도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 알아차리는 일이다.

나는 고통 안에 빠져 허우적이는가 아니면 고통을 바라보는 자리에 앉아 있는가?

위파사나 명상은 내게 통증을 없애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뇌종양 제거 수술 또한 내 삶을 새롭게 바꾸어놓지를 않았다. 다만 그 순간을 통과한 것처럼 나를 직시하게 한다.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과 나 사이에는 아주 작은 틈이 있다는 것, 그 틈 안에서 나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는 것, 그 숨이 곧 살아 있음이라는 것.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겪는다. 병을 겪고, 상실을 겪고, 관계를 겪고, 실패를 겪고, 두려움과 외로움을 겪는다. 이 모든 것을 겪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리는 힘, 내가 여기에 살아 있다는 감각이 아닐까!


고통은 또 올 것이다. 

어디들 가든, 무엇을 하든, 삶은 다시 나를 흔들 것이다. 

그럴 때면 지금 이 순간을 살아보자.


물 끓는 소리, 미미하게 피어오르는 커피향,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고양이의 갸르릉 소리, 부대끼는 사람들 속에서 손을 내밀어 환하게 인사를 건네는 순간, 그때 생은 가장 아름답게 빛난다.


Carpe Diem

오늘을 살아낸다는 것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음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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