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피디의 불펀한 생각] ep.7 콘텐츠도쿄 2025 참관기: 관계, 캐릭터, 그리고 시야의 확장
지난 7월 2일부터 4일까지 사흘간, 일본 도쿄 빅사이트에서는 아시아 최대 콘텐츠 전문 전시회인 '콘텐츠도쿄 2025'가 뜨거운 열기 속에 펼쳐졌습니다. 영상, 만화, 게임, 라이선싱 등 다양한 분야의 글로벌 기업과 바이어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 축제에,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광주콘텐츠코리아랩의 지원으로 저희 콘텐츠팜 호미를 비롯한 광주 기업들이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쿠팡플레이 다큐 '2024 옐로 스피릿' 등 영상 콘텐츠 IP를, 캐릭터 콘텐츠 기업 플로피즈(대표 윤여섬)는 대표 캐릭터 '루크'와 '루나' 그리고 다채로운 굿즈를 선보였습니다. 웹툰 콘텐츠 기업 비에스(대표 국병석)는 웹툰 '후디후디'의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해외 시장의 문을 힘껏 두드렸습니다.
일본 비즈니스, '관계'의 씨앗을 뿌리다
사전 교육 당시, 일본 기업들은 주로 3년 이상 꾸준히 신뢰를 쌓고 네트워킹을 하면서 비즈니스 계약을 하는 경향이 있기에, 첫 참여 기업들은 성급한 계약 성사보다는 결이 맞는 기업들과 인연을 맺고 사업 아이템을 소개하는 데 주력하라는 조언을 받았습니다. 실제 전시회 현장은 이러한 조언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했습니다. 테마별로 1~5관으로 나뉜 방대한 공간에는 일본, 한국, 대만, 홍콩 등 다양한 국적의 크리에이터들이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기업 중에 두각을 나타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바이어들 역시 진흙 속 진주를 발굴하기 위해 참여한 이들이기에, 부스를 수차례 오가며 매의 눈으로 관찰하고 기록하고 문의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저희 광주 기업 부스는 라이선싱 섹션 내 '디스커버리 코리아'라는 특별 구역에 위치했습니다. 맞은편에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은 유수의 한국 기업들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저희는 결코 성과 면에서 밀리지 않았습니다. 베테랑 통역 선생님들이 일본어 브로슈어와 기념품 등을 적극적으로 나누어주며 광주 부스는 사흘 내내 활기를 띠었고, 이는 많은 바이어들의 발길을 붙잡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콘텐츠의 심장, '캐릭터'의 무한한 힘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분야는 단연 캐릭터였습니다. 특히 플로피즈의 캐릭터 '루크'와 '루나'에 대한 현지의 반응은 놀라웠습니다. 디자이너 자매가 창업한 기업으로,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윤여섬 대표님의 이야기가 더해져 스누피를 닮은 '루크'와 고양이 '루나'는 친숙하면서도 세련된 매력으로 바이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거의 20분에 한 번꼴로 상담과 문의 요청이 쇄도했는데, 문구, 방송, 디자인 등 영역을 가리지 않는 뜨거운 관심은 다른 한국 부스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었습니다. 익산에서 태어나 서울, 순천을 거쳐 작년부터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웹툰 콘텐츠 기업 비에스 국병석 대표님의 '후디후디' 캐릭터 또한 당장 일본 애니메이션에 활용해도 손색없을 디자인으로 게임업계의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캐릭터는 콘텐츠 산업의 근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웹툰,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도 결국은 메인 캐릭터를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따라 스토리의 세계관과 향방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캐릭터가 매력적일수록 다양한 산업군과의 협업이 쉬워지고, 확장성도 커진다는 것을 이번 전시회를 통해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따라서 콘텐츠 산업 진흥을 위해서는 매력적인 캐릭터에 대한 이론적 토대와 이를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 그리고 협업을 촉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론, 제가 구축한 영상 속 캐릭터들은 과연 명료하고 매력적인지, 전체 스토리 속에서 충분한 개연성을 갖고 펼쳐지고 있는지도 함께 점검하는 귀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뜻밖의 만남, 그리고 시야의 확장
저희 콘텐츠팜 호미는 전시회에서 뜻밖의 손님들과 마주했습니다. 지난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상대 팀으로 만났던 일본 J리그의 '비셀고베', '가와사키프론탈레', '요코하마마리노스' 팬들이 저희 부스를 찾아와 반갑게 아는 척을 해주었습니다. 광주라는 팀이 너무나 매력적인 강팀이었다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그들에게 저는 감사한 마음에, ‘옐로스피릿’ 볼펜과 캘린더 등을 주섬주섬 건넸습니다. 역시 축구는 만국 공통어였습니다. 이와 함께 요코하마 축구영화제 집행위원장과의 미팅을 통해 저희 다큐멘터리 출품에 관한 논의를 이어갈 수 있었는데, 통역사님의 대활약으로 원활한 소통이 가능했고, 7월 말까지 일본어 자막본으로 재제작하여 극장판 다큐멘터리를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그 외에도 한국 현지 로케이션을 원하는 영상 업체와 건축 회사 등에서 구체적인 비즈니스 상담을 나누는 등 다양한 기회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공급자이자 동시에 수요자로서 일본 시장 진출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찾아 다른 부스들을 꼼꼼히 살펴봤습니다. 한국에서 참가한 기업 중에는 QR코드를 찍으면 자연스럽게 스포츠 정보가 홀로그램으로 구현되는 기업과, AI 업스케일링 기업과는 당장 실무적인 협의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는 콘텐츠 산업이 단순히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그리고 '어떤 기술과 융합할 것인가'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행사 마지막 날 저녁, 참여 기업 대표들끼리 모여 '매력적인 캐릭터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캐릭터, 웹툰 등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분야의 대표들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야가 넓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역시 콘텐츠 산업은 우연한 충돌 속에서 빚어진 만남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다양한 관점이 섞이면 섞일수록 좋은 콘텐츠가 나오고, 건강한 협업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올해 처음 열린 네트워킹 데이에서는 일본, 대만, 홍콩 등 다양한 국적의 크리에이터들과 명함을 교환하며 잠깐의 대화 속에서 똑같은 고민을 발견했고, 인스타그램으로도 언제든 연결될 수 있음에 이질감보다는 동질감을 느꼈던 순간이었습니다.
관점의 전환, 그리고 로컬 콘텐츠의 가능성
생각보다 분주하고 또 치열했던 사흘을 보내고 마무리할 즈음, 비행기 시간 때문에 폐회 시간보다 서둘러 공항으로 향하는 길에도 끝까지 남아 부스를 지켜준 통역사님과 광주콘텐츠랩코리아 관계자분들이 비즈니스 미팅 주선 문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지금까지 방송사에서 18년 동안 재직하며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의 관점에서 콘텐츠를 제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또 관점을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이번 전시회 한 번의 경험만큼 그 중요성이 실감나게 다가왔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해외 시장의 실질적인 구매자들의 반응과 관심사, 그리고 설령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치열한 판매 노력과 프로모션 활동을 보면서, 제가 혹시 '무엇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에만 만족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해외 시장은 진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레 포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콘텐츠 판매를 통한 수익 창출이라는 본질적인 산업 구조에 대해서 다소 안이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역의 많은 콘텐츠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이와 같은 전시회 참여 기회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동기 부여 측면에서도, 좋은 콘텐츠는 국경을 넘어 사랑받을 수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편으론, 이번에 참여한 다양한 콘텐츠 중에서 가장 눈길이 간 것은 바로 로컬과 개인의 특수성을 잘 살린 캐릭터였습니다. 기술적 퀄리티도 중요하지만, 결국엔 거창한 세계관이 아니라 '나와 지역의 경험과 성찰 속에서 끌어낸 지혜와 감정'들이 독특한 표현 양식으로 기능할 때 전 세계적으로도 통용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K-드라마와 K-팝의 열풍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당장 광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신드롬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였습니다. 모든 로컬 콘텐츠 기업의 분투를 응원하며 글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