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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여행 -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오주섭| |댓글 0 | 조회수 323



< 영랑 김윤식 선생 생가  사진:강진문화관광청


작년 가을, 지인들과 함께 유홍준 교수가 남도문화 답사 1번지로 꼽은 강진을 다녀왔다. 우리나라 초창기 문단의 거성 `모란시인` 영랑 김윤식의 생가를 제일 먼저 둘러보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은행나무 아래에선 한 아낙네가 은행을 줍고 있고, 하트 모양의 국화꽃과 영랑의 여러 시비 앞에서 우리 모두는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잘 보존된 초가의 정취가 문득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영랑 김윤식 선생 생가  사진:강진문화관광청 >


내가 어릴 적 살던 집은 동네 제일 뒤쪽에 있었고, 방 2칸, 부엌, 헛간이 있는 조그만 초가였다. 이 작은 초가집에서 여덟 식구가 함께 살았다.  해질 무렵 초가 처마 끝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밥 짓는 연기를 보면 밖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도 곧장 집으로 뛰어갔다. 밥 짓고 난 잔불에 감자 고구마, 밤을 구워 먹던 아련한 추억과 닭장에서 온기가 가시지 않은 달걀을 꺼내려다 닭한테 쪼이기 일쑤였지만 날달걀의 그 고소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몇십 년이 지났어도 영랑 생가에서 정겨운 초가를 보자 옛 추억이 저절로 생각난다는 게 참 신기하기만 했다.

 

시골에 살면서도 농사일에 서툴렀던 나는 낫 등 농기구에 손과 발 등 여러 곳을 다치기 일쑤였다. 보다 못한 부모님께서 나에게 내린 특명은 염소를 돌보도록 하는 거였다. 들판에 파릇파릇 풀들이 돋을 무렵이면 학교를 다녀와서 까만 염소를 데리고 동네 앞들로 야산으로 돌아다녔다. 하루는 염소를 나무에 매어놓고, 친구들과 한참을 뛰어놀고 났더니 어느새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부리나케 염소를 매어놓은 곳으로 가보니 자리에 없다. 이리저리 염소를 찾아 헤매다 보니 어느새 날은 캄캄해지고 문득 무서움이 밀려왔다. 어쩔 수 없이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집에 와 보니 이 녀석이 집에 와있다. 반가움과 함께 와락 설움이 밀려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여름이면 친구들과 함께 동네 앞 냇가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고, 섬진강으로 천렵(川獵)을 다녔다. 친구들이 각자 집에서 솥단지와 고춧가루, 된장, 호박잎 등 매운탕을 끓일 재료를 가져와 섬진강으로 향하던 흙먼지 길은 정말 신나고 재미있는 길이었다. 은모래가 반짝이는 섬진강은 여느 해수욕장 못지않아서 광주에서도 모래찜질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지락만한 제첩과 모래무지들이 모래속에 숨어있고, 자갈돌이 구르는 은빛 여울에는 수박 향을 그윽하게 품은 은어가 수백 마리씩 떼를 지어 몰려다녔다. 날쌘 은어를 맨손으로 잡겠다며 흠뻑 젖은 모습으로 강물을 내달리던 친구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가을에 형제봉이 있는 동악산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했다.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황금들녘과 구불구불 한가로이 흐르는 섬진강이 형형색색의 가을단풍 빛과 어울려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찬바람이 불 때면 아버지와 형들을 따라 동네 앞 냇가로 참게를 잡으러 다녔다. 싸리나무로 엮어놓은 발을 냇가에 가로질러 쳐놓고, 굴속에 숨어있다 밤에 섬진강으로 떠내려가는 녀석들이 발에 걸리면 잡았다. 집게발에 털이 달린 녀석들이 참 무섭게 느껴졌다. 


밤새 꽁꽁 언 방문을 조심스레 열면 장독대에 수북하게 쌓인 함박눈이 파란 하늘빛과 어울려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이런 날이 여러 날 반복되면 친구들과 함께 마을 앞 야산으로 손발이 꽁꽁 얼 때까지 하루 종일 산토끼를 잡으러 다니곤 했다. 날이 조금 풀리는 날이면 얼음이 두꺼워진 마을 앞 논에서 팽이를 치고, 썰매를 타던 겨울날의 풍경이 지금도 엊그제 그린 한 폭의 동양화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다. 


인생을 흔히 여행에 비유를 하곤 한다. 여행을 간다는 것은 언제나 마음 설레는 일이다. 특히 어린 시절로의 추억여행은 삶에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준다. 가끔 철없던 그 시절의 추억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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