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en Camino, 당신의 여행에 행운이 가득하길
내가 사라졌다
나는 어디로 갔을까?
말뚝처럼 무뚝뚝한 나를 보았다.
2년 길게는 4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한다.
월세 사는 사람들의 루틴이다. 집주인의 성향에 따라서 한차례 연장을 할 수 있다.
95년 결혼해서 수도 없이 이삿짐을 들고 날는 원더우먼이었다.
초창기에는 1년에 한 번, 그것마저 안될 때는 지하 극장 소품 창고에 짐을 꾸겨놓고 무대가 방이 되어 아이의 생일을 몇 해 보내기도 했다.
초기에는 이고 지고 할 짐이랄 것도 없어서 1년에 이사하는 것 따위는 우스웠다.
게다가 웬만한 것들은 공연용 소품 소도구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어떨 때는 집이 극장이고
극장이 집이고 내가 배우인지 아줌마인지 구별이 안 된다 물론 여전히 그런 성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이번 이사는 오랜만이다 2017년 지금 살고 있는 계림동으로 옮겨온지 만 7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들쑥날쑥한 생활패턴에 저 사람들이 뭐하나? 궁금하셨을 터인데 연극하는지 아시고는 다른 집주인들과는 달리 친절하셨다. 자주 월세가 밀리긴 했어도 한 번도 재촉하지 않으셨고 되레 좋은 말을 해주셨다. 그래서인지 마치 엄마 집 이층에서 사는 것 같아 편했다
‘우리 집에서 사는 사람들은 다들 집 사서 이사해요. 그러니까 집 사서 이사하세요’
오~ 그래요 그럼 저도 집 사고 그 때 이사 하겠습니다.
입밖으로는 그렇게 소원을 했지마는 입속에는 사실 저는 극장 POOR 우물거렸다.
그럴날이 오려나? 극장을 그만두면 그나마 가능할지도~;;;
근데 극장과 집 선택하려면 여전히 난 극장을 선택하겠지
현실은 여차여차 살던 곳을 이사해 더 작은 공간으로 옮겨야 했다
한꺼번에 이삿짐을 옮길 수 없는 공간이라 가져갈 것과 버릴 것을 분리해야 했다
찔끔찔끔 짐 정리하고 있는데 오메이~ 징상시럽다~
7년을 살았으니 2년짜리 짐보다 많겠기는 했지만 휴우~ 거시기머시기 할 말이 없다.
문득, 버려야지 하면서 쌓아둔 짐들, 이삿짐으로 옮겨온 이후 한반도 풀어보지 않은 박스 등등 짐 보따리 등이 먼지가 더께로 쌓여 한 구석탱이에 쑤셔 박혀 있다.
뭔 금덩이 패물인가, 값비싼 보물 못 도망가게 꽁꽁 묶여 있다
끙, 짐보따리 매듭을 풀어내는데 푸울풀 날리는 먼지가 콧구멍으로 들어와 한 차례 깊은 재채기를 했다 에에취~~~
“당신의 소원 세 가지를 말하라, 그게 무엇이든 들어주리니!”
눈앞에서 요술램프 지니가 나타났다.
앗, 3000년의 기다림인가? 그렇다면 나는 틸다스윈트?
“세 가지 소원? 다 들어주겠다고? 좋아, 내 소원은....”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 해 2016년 안식년을 선언했다 아니 선언당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연극 23년 차 무지막지하게 옆도 뒤도 안 돌아보고 앞만 보고 내리 달렸다. 마치 기관차처럼 질주 중이었다 아니 폭주 중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연료 보급을 위해 동료들을 재촉했다 한마디로 히스테릭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나는 질주였는데 그들에게는 폭주인 셈이었다. ‘좀 쉬어라, 좀 쉬세요, 어지간히 하세요’등등 말들이 쏟아졌다 그 소리가 마치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았다 주저앉고 싶지만, 그만두고 싶지만 늘 책임감 때문에 겨우겨우 힘을 내고 있는 나에게 위로는 못 할망정 쉬라니? 마치 그만두라고 외치는 것 같아서 서운한 마음이 올라오더니 되레 더 화가 났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해왔는데....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온몸을 뜨겁게 뎁히며 쏟아졌다
잘못의 뉘우침인가? 너 왜 울어? 자책을 하면 할수록 눈물은 걷잡을 수 없었다
간단히 짐을 꾸렸다 가볍게 쉴 요량이었다
계획은 늘 바뀌는게 계획이라고 했던가?
여지없이 계획과는 달리 14개월 안식년의 시작이 되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독수리도 자신을 품어 준 둥지를 버리고 홀로 태양을 향해 날아 올라가듯이”
엄마 돌아가신지 3년 차 였다. 엄마를 충분히 애도하지 못했구나!
2013년 음력 8월 추석 전날 그러니까 양력 9월 18일에 엄마가 돌아가셨다.
추석 상을 준비하면서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손주들 다 모이라고 하셨다
결혼 초를 제외하고는 늘 밥상 자리에 빠졌던 소위 연극인 딸 사위까지 다 모였다.
‘오메, 오래 살다 볼일이다~“
너무 좋아하시는 그 모습을 뵌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날 밤, 잠자리에 드시고는 더 이상 밥상을 차려주지 않으셨다
오래 살다 볼일이라더니....좀 더 오래 살지...뭘 그렇게 오래 살았다고...
그냥 그렇게 오래산 것 처럼...그렇게 가버리냐고...
10월 2일부터 시작하는 곡성 심청 축제 공연 준비하느라 정신없었다.
그 정신없음이 결국 탈이 나서 폭주 기관차처럼 달렸다.
그렇게 서운해해 한 눈물은 엄마의 눈물 한방울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엄마 가시면서 내 쉴자리 봐두고 가셨는데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몰랐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 화살을 꽂고 태어났다보다.
빼려고 해도 아프고 가만히 두어도 아프다_칼릴 지브란“
순례자,
이삿짐들 사이 노끈으로 묶여진 책들 사이에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군, 순례자의 길에 들어선 내게 어쩌면 계시인가?
언제 읽었던가, 양장본 책 표지를 넘기니 2011년 메모가 끄적여 있다
칼릴 지브란이 되고픈...어쩌고 저쩌고...크크크
▛나는 이제 더 이상 여기에 머무를 수가 없다. 모든 것을 자신에게 불러 감싸 안는
바다가 나를 부르니 이제 나는 배에 올라 떠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든지 한 곳에 오래 머물게 되면 시간의 등불은 밤새워 쉼 없이 탈지라도
스스로 얼어붙고 굳어져서 일정한 틀속에 갇히게 된다
그러니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을 함께 가져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혼자서 저 빈 하늘로 날아가야 한다.
독수리도 자신을 품어 준 둥지를 버리고 홀로 태양을 향해 날아 올라가듯이▟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배가 오다>중에서
그렇게 나는 이 문장 속 독수리 날개에 훌쩍 뛰어오르기로 했다.
이삿짐을 싸면서 2016년으로 훌쩍 날았다.
공간을 옮기는 것은 마치 여행하는 것과 같다.
새로운 공간으로 몸을 옮기면 처지도 변한다고 한다.
여행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