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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티켓팅 훈련도 별도로 해야 하나?

채문석| |댓글 5 | 조회수 119

코로나가 한창일 땐 마라톤 대회고 뭐고 죄다 멈췄다. 그러다 보니 달리기 대신 늘어난 건 뱃살과 핑계뿐.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헬스장에 발을 들였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다. ‘대회 한 번 나가볼까?’ 하는 욕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트레드밀 위에서 땀 몇 방울 흘리고 나면, 괜히 내 안의 숨겨진 케냐 선수 본능이 깨어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예전 기억을 더듬으며 마라톤 대회 일정을 찾아봤다. 서울 도심과 한강을 시원하게 내달리는 멋진 코스! 그런데 웬걸. 접수는 이미 끝. 그것도 순식간에. 요즘은 마라톤 대회 접수도 콘서트 예매 못지않다더니, 진짜였다. 창이 열리자마자 몇 분 만에 마감이라니, 이제는 달리기 실력보다 손가락 스피드가 중요한 세상이다. 물론 일정 등을 부지런히 찾아보고 접수의 요령 등을 터득했어야 했다. 나는 그저 느긋하게 준비했을 뿐이고. 한마디로 요즘 러닝 열풍을 너무 얕봤다. 이제 마라톤 대회도 ‘광클릭’, 그러니까 티켓팅을 잘해야 참가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교훈을 얻고는 지금은 9월 서울 대회 ‘티켓’ 하나만 손에 쥔 상태다. 이젠 달리기 훈련보다 급한 게 따로 있다. 바로 ‘티켓팅 훈련’이다.


 


요즘 대한민국은 가히 러닝 공화국이다. 특히 서울, 춘천 같은 메이저 대회는 거의 콘서트급 티켓팅 전쟁. 접수 오픈과 동시에 서버는 터지고, 5분 만에 접수 마감. 그 중심에는 2030세대가 있다. 주요 대회 참가자 통계를 보면, 2030세대가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마라톤은 중년들의 전유물 같았는데, 이제는 젊은이들의 놀이터가 됐다. 내년 3월 열릴 예정인 동아마라톤이 이미 마감됐다니, 말 다 했다.


이 열풍의 한복판에는 러닝 크루가 있다. 또래들이 모여 유니폼 맞춰 입고, 구호를 외치며, 인증샷을 찍고 달린다. 혼자 달리면 지루하다는 걸 너무나 잘 아는 그들. SNS로 소통하고 함께 훈련하며 만들어내는 이 소셜 러닝 문화는 이제 하나의 트렌드, 하나의 ‘러너 커뮤니티’다. 달리기는 어느새 기록보다 관계, 체력보다 분위기의 운동이 되어가고 있다. 


이 열기를 더욱 끌어올린 건 방송의 힘도 컸다. ‘무쇠소녀단’에서 연예인들이 철인3종에 도전하며 마라톤에 나서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고, 웹툰 작가인 기안84가 대청호 풀코스에 이어 뉴욕 마라톤까지 달리는 장면은 무심한 시청자도 슬쩍 러닝화를 꺼내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허재, 양준혁 같은 중년 스포츠 스타들이 큰 덩치를 이끌고 헉헉거리며 뛰는 장면까지 나오니, 이쯤 되면 안 뛰고는 못 배긴다. 


 


하지만 모든 열기엔 그늘이 있게 마련이다. 최근에는 일부 러닝 크루의 민폐 행위에 불만을 호소하는 시민들도 늘고 있다. 수십 명이 무리를 지어 보행로를 점거하고, 큰 음악을 틀며 달리는 모습은 보기엔 화려하지만, 함께 걷는 이들에겐 눈살 찌푸릴 일이다. 결국 한강 둔치에는 ‘한 줄로 달리라’는 경고문이 붙었고, 일부 운동장에선 5인 이상 단체 러닝이 금지되기도 했다. 민폐 크루와 민원 사이,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이다.


또 다른 그림자는 상업화다. 기능성 운동화는 한정판이 되면서 리셀 시장이 생겼고, 고급 러닝 시계, 영양 젤, 기능성 의류까지 ‘러너의 필수템’이라며 쏟아진다. 골프 같은 고급 스포츠를 피해 러닝을 택했건만, 요즘은 달리기도 장비빨 안 받으면 소외당하는 세상이 됐다. 건강을 위해 뛰던 발걸음도 이젠 가격표를 달고 있다. 달리기가 어느덧 브랜드가 되고, 자본이 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닝의 인기는 쉽게 꺾이지 않을 것 같다. 10km를 뛰고 나면 하프 마라톤이 눈에 밟히고, 하프를 넘으면 42.195km 풀코스 마라톤이 꿈에 나온다. 나아가 울트라 마라톤, 철인3종까지 도전의 욕망은 끝이 없다. 누군가는 기록을 좇고, 누군가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달린다. 이유는 달라도 마음은 하나다. 조금씩, 멈추지 않고 나아가고 싶다는 것. 문제는, 접수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너의 자리는 없다’는 싸늘한 통보가 내려오는 이 현실이다.


이쯤 되면 묻고 싶다. 반응 속도 느려진 60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래도 나는 믿는다. 속도는 느려도, 걷지 않고 꾸준히 달리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그게 바로 내가 살아오며 배운 인생의 법칙이다.


그래서 오늘도 운동화를 신는다. 속도는 느려도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땀방울을 흘리는 그 순간, 나도 이 열풍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다만 하나는 인정한다. ‘티켓팅 훈련’만큼은, 20대 아들한테 과외를 좀 받아야겠다. 눈보다 빠른 손가락이, 요즘엔 체력만큼이나 중요한 시대니까.


 

5 댓글
06.25 14:33  
운동 싫어하는 제가 읽다보니 왠지 동참해야 할 것 같은, 그렇게라도 힙해지고 싶어집니다. ㅎ ㅎ 무릎관절이 좀 걱정되긴 하지만 부럽기도, 도전의욕이 생기기도. . 음 신발만 장만하고 말까봐 걱정스럽기도 핰하고
智德 06.25 15:04  
걷기 속도로 뛰는 슬로우조깅도 좋습니다.  힘도 안 들고 운동 효과도 있어요
06.25 14:53  
속도보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 깊이 공감합니다. 러닝이 단순한 운동을 넘어 하나의 문화, 관계, 심지어 세대 간의 공감대가 되어가는 걸 느껴요. 누구나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땀방울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따뜻하네요
智德 06.25 15:05  
뛰다가 쉬어 버리면 다시 못 뜁니다
수문 06.25 15:10  
유혹이 있어야 트렌드를 만들어낸다.
반짝이는 불빛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어떤 하나를 자극하면 너도 나도 몰입하는 냄비근성 강한 우리 아닌던가.
그래, 야구(프로야구에 국한)처럼 그나마 쭈~욱 트렌드를 유지한다면 유리무릎인 나도 언젠가 뛰어볼 날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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