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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플광24』


완장

오주섭| |댓글 1 | 조회수 86

70년대 시골에서는 아궁이에 나무를 때서 밥을 하던 시절이라 땔감이 아주 귀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동네 근처 야산에 자루 하나 달랑 들고 동네 형들을 따라 솔방울을 주우러 다녔다.

 

어느 날 누군가 알아듣지 못할 큰 소리를 질러댔고, 동네 형은 내 손을 잡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마을 어귀에 와 있었고, 형들은 눈이 동그래진 나한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까 그 산은 관리하고 감독하는 사람이 있는데 ‘산감(山監)’이라고 하며 완장을 차고 있고, 솔방울을 따다 걸리면 혼쭐이 난다는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완장을 찬 사람들은 참 무섭구나”라고 생각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그 무서운 완장을 학교 선도부가 차고 있었다.  


 

< MBC 명작드라마 완장(1989) - 저수지를 함부로 쓴다고 나이가 한참 많은 동네 어르신을 마구잡이로 대하는 종술 >


무소불위 권력의 상징, 완장

 

윤흥길 작가의 대표작인 『완장』이라는 소설이 있다. 대강 줄거리는 이렇다. 땅 투기로 돈푼깨나 만지게 된 졸부 최 사장이 널금 저수지의 사용권을 얻어 양어장을 만들게 되고, 저수지 감시를 이곡리의 한량 임종술에게 맡긴다.


감시원 완장을 두른 종술은 완장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날부터 안하무인격으로 마을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발버둥 친다. 타지로 떠돌며 밑바닥 거친 일로 신물 나는 인생을 살아왔던 종술에게 완장이 금배지 이상으로 다가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작가는 한국인의 가부장적인 권위 의식과 권력 의식을 ‘완장’이란 상징물로 표현해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완장은 권력의 상징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엔 ‘완장’찬 사람들을 별로 보지 못했다. 당시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노란 완장‘을 찬 홍명보와 박지성을 보며 ’아직도 완장이 존재 하는구나’라고 느꼈을 정도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소위 4대 권력기관인 검찰, 국정원, 경찰, 국세청은 다시 ‘완장’을 차기 시작했다. 민주 정부 10년 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지 못한 것을 보상받으려는 듯 과거 권위주의 시절로 빠르게 되돌아갔다. 


이명박 정부 당시 가장 기억나는 것 중의 하나는 진압복 차림의 전경들이 인도 쪽으로 달아나는 시민을 쫓아가 방패 모서리로 내리찍는 장면이었다. 군인과 경찰 등 계급사회에서 상부의 암묵적인 동의나 지시가 없이 말단에서 국민에게 직접적인 물리력을 행사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권력 상층부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말단 전경에게까지 전달되어 방패를 흉기로 사용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권력을 가진 집단이 국민을 섬기는 대상에서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만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 최근 미국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박근혜정부 10년 동안의 적폐청산을 위해 검찰개혁 등을 추진했지만 미완으로 끝났고, 결국 권력은 전두환의 후예들에게 넘어갔다. 윤석열 정부는 재빠르게 완장을 차며 권위주의 정부 시절로 회귀했다.


다행히 12.3 비상계엄 당시 권력자들의 불법적인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제복 입은 시민들과 민주시민들, 야당 국회의원들의 발빠른 대처로 계엄을 막을 수 있었다. 만약 그때 계엄이 성공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재명 정부, 권력기관의 완장, 확실히 벗겨야


우리 국민은 수십 년 동안 독재정권과 싸워 민주주의를 쟁취했고, 지난 윤석열 정부 3년 동안 대한민국과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법철학자인 액튼 경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의 의미는 법을 제정하는 입법부, 만들어진 법에 따라 심판하는 사법부, 나라의 일을 주관하는 행정부 등이 고유의 기능에 따라 견제하고 감시하지 않으면 권력은 사유화되고 부패하기 쉽다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를 교훈 삼아 이재명 정부는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하기 보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일하는 권력기관의 완장을 임기 동안 확실히 벗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내란세력 청산에 좌고우면하지 말고 오로지 국민을 믿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또한 헌법과 법률, 제도를 완비하고, 내란세력을 확실하게 청산해야 누가 권력을 잡든 완장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더욱 공고해진다.


 

1 댓글
보름 06.23 22:25  
아 완장 찬 이들이 아직도 곳곳에 가득합니다. 새 정부에선 물갈이가 되길. . .간절하게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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