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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잔망스러운 신(神)을 보았나?

서해숙| |댓글 0 | 조회수 88

요즈음 사람들은 도깨비 하면 응당 배우 ‘공유’를 떠올리고 공유의 너무나도 멋진 모습과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겸비하면서도 사랑을 위해 그가 펼치는 마법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된다. 극작가의 뛰어난 필력으로 인해 오늘날 도깨비는 그렇게 화려하게 변신에 성공하여 우리에게 또 다른 판타지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전통적으로 도깨비는 어떻게 이야기되고 있었을까? 이제는 도깨비 하면 모두 사라지고 없는 아득히 먼 옛이야기처럼 치부하지만, 한밤에 전깃불로 세상을 환하게 비추기 이전까지는 도깨비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나 보다. 도깨비가 얼마나 많았으면 도깨비를 우리나라 대표 성씨인 김씨 성을 따서 ‘김서방’이라고 부른다고 했을까. 심지어 제주도에서는 ‘참봉’이라는 벼슬직도 하사하여 불렀다. 



실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버지, 우리 할아버지, 우리 아저씨들이 젊은 시절에 도깨비를 직접 봤다는 일화가 심심치 않게 전하고 있다. 심지어 도깨비와 밤새도록 씨름을 하여 결국 이겼다는 이야기는 비일비재하다. 


도깨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아주 독특한 신이다. 신이라고 하기에는 근엄함에 있어서 뭔가 많이 부족하고, 귀신이라 하기에는 괴기스러움이 부족하다. 신이라고도 할 수 없고 귀신이라고도 할 수 없는 신의 영역 어느 경계선에 위치해 있다. 간혹 우리의 도깨비를 일본의 오니와 혼돈하고 있으나 이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도깨비는 늘상 사람들 곁에 가까이하고 싶어서 으슥한 밤이면 나타난다. 그런데 도깨비 하는 행동을 보면 잔망스럽기가 이를 데 없다. 남자들에게는 다가가 친구 하자고 하고, 과부들에게는 기꺼이 기둥서방 노릇도 마다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도깨비를 받아주면 감사의 정표로 그들에게 재물을 한가득 선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쉬울 때면 도깨비의 친구가 되어주거나 마누라도 되어주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게 되면 도깨비를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래서 도깨비가 아주 싫어하는 말피를 집 주위에 뿌려서 그들의 접근을 차단한다. 뒤늦게 이를 깨달은 도깨비는 사람들에게 복수하려고 하지만, 또다시 사람들에게 당하고 허둥지둥 도망가는 지극히 어리석은 존재일 뿐이다.  


이처럼 도깨비는 냉혹하지 않고 단순한 열정을 지니며, 인간들처럼 웃기도 잘하고 여자를 좋아하며 씨름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화가 나면 무섭지만 또 쉽게 용서해준다. 잘 도와주다가 의리를 저버리면 심술을 부리고 무섭게 응징한다. 머리가 좋지 않아 쉽게 잊어버리지만 감정이 호방하고 욕심 많고 보물을 만진다는 점에서 이부영 교수는 무속의 대감신의 성격과 유사하고 그리스신화의 디오니소스와도 상통한다고도 했다. 


도깨비는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간 신이다. 그러나 하는 행동을 보면 어리석고 잔망스러워 신이라 부르기에도 어설프다. 신의 세계에서도 계보가 있다면 도깨비는 가장 밑바닥에 자리한 신이라고 할까? 신이라도 해도 제대로 섬기지도 않는다. 일부 도서해안지역에서는 ‘도깨비고사’를 지내거나 ‘도깨비불’을 보면 풍어를 한다고 믿기도 하지만 여느 신에 비하면 대접이 시원찮을 뿐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쓰다가 버린 빗자루 몽댕이나 불쏘시개로 쓰다 버린 간짓대가 도깨비의 정체라고 한다. 사람들의 피와 땀이 묻은 것들이 도깨비로 변하여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도깨비를 위엄이 있거나 품격 있는 신으로 볼 리가 만무하다. 


< 월인석보月印釋譜 >, < 역어유해譯語類解 >의 기록에 의하면, 도깨비를 ‘독가비’, ‘독갑이’, ‘귓것’이라 적고 있으며, 한자로는 鬼, 魅, 魍魎 등으로 표하였다. 오늘날은 지역에 따라 도채비, 돛채비, 토째비, 토찌비, 또깨비, 토개비 등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그리고 도깨비를 인도깨비와 개수도깨비로 나누는데, 인도깨비는 사람과 친하며 재산을 모아주고 육지에서 만나면 거름을 떠준다고 한다. 그러나 개수도깨비는 뿔도깨비로 사람을 해치고 고기를 줘야 하며 획 지나가면 노랑내가 난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전역에서 수집한 도깨비 이야기를 살펴보면, 도깨비와 씨름하는 겨루기 이야기가 가장 많고, 도깨비를 만나 부자가 되었으나 결국 도깨비를 쫓아버리는 이야기, 도깨비에 홀려서 고생이 많이 했다는 이야기 등등이 전해오고 있다.


인간은 자연을 극복하는 끝없는 싸움 속에서 비, 바람, 구름, 번개, 천둥 따위를 관장하는 신을 창조하였다. 인간은 자연재해로부터 인간을 보호해 주고 액운을 막아주는 수호신이 필요하였으며, 더 나아가 농경문화 속에 풍농을 제공할 수 있는 신이 필요하였다. 엘리아데에 따르면 지고존재신이 태풍신이나 비의 신으로 ‘전문화專門化’된 직능신으로 분화하였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 단군신화 >에서 환웅이 태백산으로 내려올 때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한 것은 인간생활 즉 농경생활에 있어서 바람, 비, 구름은 필요불가결한 전문화된 신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각각의 기능에 따라 전문화된 직능신들은 훗날 민간신앙으로 귀착된다. 


바람의 신인 영등신, 뇌성을 일으키는 벼락대신, 집을 지켜주는 성주신, 자식의 출산과 건강을 관장하는 삼신 등등이 그들이다. 이렇게 보면 도깨비 역시 사람들의 구체적인 갈망에 따라 안착한 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구체적인 갈망이 지나친 나머지 너무 희화시켜 버렸다. 사람들은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친구 같은 신을 찾았던 것일까? 되레 사람들이 이겨버릴 수 있는 신을 탄생시킨 것이다. 도깨비의 짓궂은 장난으로 사람들이 애를 먹기도 하지만 말이다. 


엄숙하고 경건한 신의 경지를 깨부숴버린 도깨비, 신이지만 친구 같은 도깨비. 우리 민족은 고유의 문화예술을 꽃피워 삶의 모든 희로애락을 표현하였듯이, 도깨비도 우리 민족 정서 속에 탄생하였으나 어설프기 그지없는 신으로 자리매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사람들을 놀래키기에 바빴던 그 흔한 도깨비가 전깃불이 생기면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심지어 사람들은 한국전쟁 때 총소리에 놀라 모두 도망가 버렸다고 농담처럼 읊조린다. 한밤중이면 달빛에 의존하며 살았던 깜깜한 세상 속에서 도깨비는 종종 친구가 되어주거나 사납게 나타나서 사람들을 놀리고 조롱하거나 때론 근엄하게 시비를 걸지만 결코 사람들을 이겨본 적이 없다. 도깨비는 애써 사람을 이기려고 노력하지 않은 듯싶기도 하다. 세상의 우픈 현실을 도깨비에게 투영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그 많던 도깨비들은 어둠 속으로 영영 사라져 버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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