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광주 > 웹진 『플광24』 > [만주에서 보낸 여름 휴가 4] 잊혀진 항일무장투쟁, 탈취십오만원사건유지(奪取十五萬元事件遺址)

웹진 『플광24』


[만주에서 보낸 여름 휴가 4] 잊혀진 항일무장투쟁, 탈취십오만원사건유지(奪取十五萬元事件遺址)

이진| |댓글 0 | 조회수 171

연변 사과배에 관한 에피소드다. 연길에서 연변식 냉면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가이드 선생은 연변지역의 특산물 사과배를 소개했다. “선생님들, 혹시 사과배라는 과일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모양이 사과 같기도 하고 배 같기도 해서 사과배라고 합니다. 사과처럼 생겼는데 먹으면 배 맛이고, 딸 때는 사과같이 불그레하나 저장하면 배처럼 노랗게 됩니다. 사과배는 연변 돌배나무에 함경도 북청 배나무를 접붙여서 탄생한 것입니다


제 생각엔 사과배가 우리 조선족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렸을 적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과일은 사과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국에서 나주배를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사과배는 배도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맛있던지 지금도 침이 고입니다. 그 뒤로 배는 나주배가 최고라고 말합니다. 연변에 오셨으니 사과배 맛도 보셔야지요. 연변 냉면에는 사과배가 올려져 있습니다. 맛있는 점심드시기 바랍니다


범도루트 일행은 사과배가 올려져 있는 연변 냉면을 맛있게 먹었다. 연변냉면은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이 혼합된 새로운 냉면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냉면에 국자처럼 큰 수저가 꼽혀 있었다. 냉면 국물에 자신이 있는 듯, 냉면 육수를 먹는 용도란다. 냉면을 먹는 도중 긴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의사 선생님 어디 계신가요?” 누군가 사과배를 먹다가 기도가 막힌 사건이 발생했다누군가 사과배를 먹다가 기도가 막힌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우리 테이블엔 함께 간 친구 윤만원(의사)이 있었다. 그가 있어 위기 상황을 무사히 넘겼다. 하인리히 응급처치 덕분이었다.

 

국가보훈부는 2023731, ‘8월의 독립운동가를 발표했다. “일제가 간도로 이송하던 15만원을 탈취한 사건의 주역인 독립유공자, 윤준희(1963년 독립장), 임국정(1963년 독립장), 한상호(1963년 독립장), 김강(1995년 독립장) 선생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한편 국가보훈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독립을 꿈꾼 청년들이 철저히 준비하고 실행한 간도 15만원 사건은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쾌거였고, 이는 그 시대를 살아가던 독립군들의 독립전쟁이었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 사건을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윤동주 생가로 가는 길, 용정촌 부근에 설치된 탈취십오만원사건유지를 찾아갔다. 이 기념비는 1990년 용정 3·13기념사업회가 주도해 세웠다.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룽징시 지신진 승지촌 인근 도로다. 삼합과 백금으로 갈라지는 도로 입구다. 2009년 기념비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었고 용정시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했다. 201710월 용정시인민정부에서 ‘15만원탈취사건유적지표지석을 세웠다.



철혈광복단은 1911년 초 이동휘가 조직한 광복단과 러시아 지역에서 19172월 혁명 이전 조직된 비밀결사인 철혈단이 통합·조직된 단체다.

소설 범도의 작가 방현석은 이 비석에서 탈취는 일제의 입장이다. 우리의 입장은 쟁취가 맞다. 일제가 우리 민족으로부터 강탈한 돈을 되찾은 것이기 때문이라며 철혈광복단 투쟁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한편 이 사건은 이만희 감독이 만든 영화 쇠사슬을 끊어라(1971)’, 김지운 감독 작품 놈놈놈(2008)’의 모티브였다고 알려져 있다.


192014, 일화 15만 원을 운반하는 호송대가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용정을 향해 출발했다. 그날 오후 간도 용정촌 부근, 승지촌과 동량리 어구에서 윤준희, 임국정, 한상호, 최봉설, 박웅세, 김준 등 6명이 거사를 일으켰다. 함경북도 회령과 중국 길림을 잇는 길회선 철도 부설 기금 15만 원을 쟁취한 것이다. 조선은행 용정출장소 행원이었던 전홍섭도 일조했다.

 

소설 범도의 작가 방현석은 전홍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홍섭은 일제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했으나, 철혈광복단원의 무기 구입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보름을 버텼다.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길범도의 길이 이 무장독립전쟁을 이어가게 했으며, 우리는 이러한 자랑찬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사건은 만주 동포들에게 청산리 대첩과 비견될만한 뜻있는 역사라고 강조했다.


15만 원을 현재가치로 따지면 150억 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소총 5천 정과 탄환 50만 발을 구할 수 있는 자금이었다. 5천 명이 무장할 수 있었다. 만주 지역의 독립군 모두를 무장시키고 더 많은 부대를 추가로 조직 할 수 있는 엄청난 거금이었다.

 

거사 직후 박웅세와 김준은 명동으로 돌아갔다. 일제에 체포되지 않았다. 단원 4명은 탈취한 자금을 대한국민의회의 선전부에 헌납하기로 하고, 123일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다음 날 대한국민의회 서기이자 철혈광복단 단장인 전일을 만나 무기 구매, 사관학교 건립 등 구체적인 사용계획을 수립했다. 임국정은 러시아 군인과 거래하기로 합의했다. 소총 1,000자루, 탄약 100상자, 기관총 10문를 32천 원에 구입하기로 했다. 안중근과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했던 엄인섭은 무기 밀매를 알선하는 척하면서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총영사관에 밀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131일 새벽, 일제는 숙소를 포위하고 단원들을 급습했다. 윤준희, 임국정, 한상호는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생포됐다. 최봉설은 탈출했다. 6명 중 3명이 밀정 엄인섭의 밀고로 일제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정박 중인 일본 군함으로 압송돼 혹독한 고문을 당해야 했다. 함경북도 청진지청 1심에서 임국정과 윤준희는 사형, 한상호는 무기징역, 전홍섭은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2심인 경성복심법원과 3심인 경성고등법원은 세 명의 단원에게는 사형, 체포되지 않은 최봉설, 박웅세, 김준은 궐석재판으로 사형을 선고했다. 전홍섭은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결국 30세 윤준희, 27세 임국정, 22세 한상호는 1921825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산화했다.


국가보훈부에서 20238월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김강은 평양 숭실학교 105인 사건으로, 1912년 만주로 망명했다. 하얼빈과 간도 등지에서 한인 청년들을 규합했다. 191911, 간도청년회를 조직했다. 일제는 간도청년회가 15만원 사건과 연루된 것으로 간주했다. 김강은 도피 생활 중 19201112일 연길현 태평구 용포동 부근에서 카노기병연대에 체포되어 연길현 동불사 북구에서 피살 순국했다.

 

 >


시간이 흘러 흘러 1964년 카자흐스탄 알마티, 15만원 쟁취 사건에 참여했던 김준은 망각의 역사를 소설 속에 복원했다. ‘십오만원사건이란 장편소설을 출간했던 것이다. 그는 15만원 쟁취 사건 당시 일제에 체포망을 벗어난 후 소련 영내에서 한인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1937년 러시아의 강제이주로 인해 카자흐스탄에 정착하게 됐다. 최봉설도 적기단을 조직해 러시아 중국 등지에서 무장투쟁을 계속했으나 강제이주당했다. 쉼켄트에 정착해야만 했다. 김준은 최봉설과의 직접 인터뷰를 기반으로 소설을 썼다. 알마티에서 출판된 한글 소설은 당시 소련 특히 중앙아시아 지역의 한인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한겨울 만주벌판에서 15만원을 쟁취했으나 동포의 배신으로 산산이 부서졌고, 더운 여름날 조국 앞에 꽃다운 청춘을 바쳤다. 이 탑은 15만 원을 쟁취한 그 지점에 설치됐다.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누군가 돌보지 않으면 수풀 속에서 감춰질 듯했다. 20대 청년들이 목숨을 바쳐 싸웠던 유지를 받드는 방법이 무엇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0 댓글


카카오톡 채널 채팅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