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걸 장군 종가의 음식문화
좌우와 남녀는 물론 세대 간 갈등마저 극심한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이견 없이 모든 국민으로부터 추앙을 받는 역사적 인물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전라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발포진 만호 이후 정읍과 태인 현감 그리고 문서상이지만 진도군수와 가리포진 수군 첨절제사를 거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되고 삼도수군통제사에 이르기까지 주요 관직 생활을 대부분 전라도에서 지냈고,조선 수군의 상징인 거북선과 판옥선 건조 등 위대한 업적들 역시 전라도에서 이루었다.
무엇보다 그를 도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정운, 나대용, 송희립 등 휘하의 주요 장수들과 수군 병사들을 비롯하여 물심양면으로 후원한 전라도 백성들의 협력은 기나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결정적인 힘이었다. 그가 영암 구림의 현덕승(玄德升, 1555~1627)에 보낸 편지에서‘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를 말한 것은,단순히 호남에서 군량미를 제공 받았음을 치사하는 차원을 넘어 이런 사정들을 모두 담아 전한 깊은 마음의 소리였음을 알아야 한다.
< 정걸 장군 초상/자료;고흥군청 >
충무공을 도와 왜란을 승리로 이끈 인물 중 최근 조명받고 있는 정걸(丁傑)장군 역시 남도 사람이다. 정걸은 왜란 발발 당시 78세 고령으로 충무공보다 무려 31세나 많은 연장자였을 뿐 아니라 이미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전라좌도와 우도 수군절도사, 전라도 병마절도사 등 수군 요직을 두루 거친 대선배 무관이었다.
1591년 전라 좌수사로 임명된 이순신은 북방 변경 지역에서의 경험이 대부분이었으므로 곧바로 수군 대선배 정걸 장군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였고, 정걸은 나이와 경력을 따지지 않고 흔쾌히 충무공의 조방장을 맡았다. 요즘의 참모장 같은 역할인 조방장으로서 수군의 운용과 전략을 조언하고, 판옥선 건조를 주도함은 물론 옥포와 부산포해전에 직접 참전하여 승전에 공헌하는 등 팔순의 나이를 잊은 활약을 펼치다 정유재란이 일어난 1597년 83세 나이로 사망한 숨은 영웅이다.
고흥군 포두면 길두마을에는 정걸 장군의 14세 손인 정종욱 종손과 종부가 지키고 있는 종가가 있다. 정걸은 상춘곡을 지은 불우헌 정극인(丁克仁, 1401~1481)선생의 5세 손이므로 압해정씨 불우헌공파에 속하고 정걸 종가는 그를 파조로 하는 지파의 종가인데, 이 종가에 다른 지역과 가문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내림 가양주와 음식이 전해져 온다.
< 정걸 장군 종가 >
대를 이어 온 가양주인 백일주는 누룩과 찹쌀 고두밥을 섞은 다음 물을 한 방울도 넣지 않고 항아리에 넣어 발효시킨 후 백일이 지나면 적당량의 물을 더해 걸러 마시는 술인데 찹쌀을 주원료로 석 달 열흘 동안 공들여 익힌 만큼 달콤한 맛과 은은한 향이 매력적이다. 같은 이름의 술이야 전국 여러 가문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그것들과 차별되는 이유는 물 없이 밑술을 담은 후 발효가 끝나고서야 물을 타서 마시는 독특한 양조법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술 빚기 방식은 기온이 온화한 남방 쌀 문화권에서 온 것으로 후수법(後水法)이라고 하는 일종의 고체발효(固體醱酵) 양조법인데, 이런 주방문(酒方文)은 경기, 충청, 영남은 물론 같은 호남지방인 전라북도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남도의 전통주에서만 나타나는 양조법이다.
지금은 육지가 된 고흥 포두 들판은 정걸 장군이 활동하던 당대에는 해창만 바다였으므로 전라좌수군의 주 활동무대에 속했다. 그 해창만 바닷가에 자리한 정걸 장군의 집에 충무공을 비롯한 전라 수군 장수들이 모여 이 특별한 백일주 잔을 나누며 전략을 논하고 전의를 불태웠음직하다. 날이 풀리면 종부님과 가문의 사람들이 함께 백일주를 빚어 장군을 모신 안동사와 충무사에 백일주를 올리기로 했다.
종가의 음식 중 독특한 것으로 싱건지가 있다. 요즘 사람들은 동치미라 부르지만 ‘지’표기 문화권인 전라도에서는 싱건지라는 명칭이 자연스럽다. 이 가문의 싱건지 담금법은 좋은 무를 골라 손질한 후 소금에 굴려 묻혀 독에 넣고 찹쌀을 팔팔 끓여 체로 밭인 멀건 미음 형태의 곡수를 함께 넣는 것이다.
조선시대 음식서(飮食書)들에 여러 가지 동치미 조리법이 전해져 오고 있지만, 이러한 싱건지 조리법은 15세기 세종과 세조 임금 대에 어의를 지낸 전순의가 쓴 산가요록(山家要錄)에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을 뿐 그 실체가 전해지지 않았던 방문의 실전형이어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전통 김치류다.
< 백일주 >
구술작업 내내 “별거 아니다”라며 쑥스러워한 종부의 겸손과는 달리 정걸 종가의 백일주와 싱건지는 음식사(飮食史)적 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이다.
종가와 지자체가 협력하여 ‘충무공이 사랑한 술 백일주’나 ‘15세기 조선시대 기록에 실린 싱건지’와 같은 콘셉트의 상품화나 정걸, 정운, 송희립 등 충무공과 함께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고흥 출신 명장들의 스토리와 연계한 역사·문화 관광 상품화를 시도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