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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쓰는 레시피] ep6. 밥상에 색을 입히듯, 일상에 맛을 더하다

곽복임| |댓글 1 | 조회수 102

[사진: 밥상에 색을 입히다 Ⓒ뽀기미] 


 



〈딸에게 쓰는 레시피〉는 엄마가 계절의 재료와 사회의 온도를 살펴 딸에게 응원 한 그릇 내놓는 엄마카세다.



#1. 밥상에 색을 입히는 재미


며칠 전엔 ‘블루베리쌀’이라는 것을 발견했어. 처음 보는 쌀이라 신기해서 한참 들여다보다가 결국 장바구니에 한 봉지 담았지. 봉지를 열어보니 쌀이 제법 진한 보라색이더라. 밥도 하기 전에 벌써 신나는 거 있지? 엄마가 보라색을 좋아하잖아. 당연히 보라색 밥이 되겠거니 생각하고 밥을 지었는데, 막상 밥솥 뚜껑을 열어보니 연한 하늘색 밥이 들어 있네! 밥솥 안을 한참 들여다봤어. 마치 “하늘 한 번 쳐다봐” 하고 말을 건네는 것 같더라고. 


요즘 엄마는 밥에 색을 입히는 재미에 빠져 있어. 보기 좋은 밥이 먹기도 좋으라고. 노오란 강황쌀에 톳을 넣어 ‘황톳밥’을 짓고, 클로렐라쌀에 완두콩을 넣어 초록 밭을 밥상에 옮겨 놓고, 홍국쌀에 건 가지를 넣어 한 폭의 한국화 같은 붉은 밥도 지어봐. 사실 맛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야. 그런데 밥 색깔 하나 달라졌을 뿐인데 이상하게 식탁 분위기가 다 달라지는 거 있지? 같은 반찬을 놓아도 조금 더 밝아 보이고, 괜히 기분도 좋아지고, 나도 모르게 상차림에 공을 들이게 되더라.


아마 엄마는 오래전부터 그런 사람이었나 봐. 꽃을 꽂을 때도 색을 먼저 보고, 선물할 때도 색을 먼저 보고, 책을 만들 때도 표지 색깔을 오래 고민해. 어떤 사람은 그런 걸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엄마는 작은 색 하나가 사람의 기분을 바꾸는 경험을 여러 번 해봤잖아. 그래서 요즘은 밥에 색을 더하면서도 즐겁고, 밥솥 뚜껑을 열 때마다 내가 먼저 작은 선물을 받는 기분이 들어서 좋더라. 밥상에 앉은 네 아빠도 밥 색깔 하나 달라졌는데 유명한 셰프의 고급 레스토랑에 앉은 기분이래.



#2. 일상에 맛을 더하면… ‘살맛’


엄마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밥상에 관심이 많았어. TV에 나오는 근사한 식탁 말고 진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밥상 말이야. 새벽같이 출근하는 사람이 허겁지겁 먹고 나가는 아침밥도 있고, 아이들 챙기느라 정신없이 차려 낸 밥도 있고,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와 늦은 밤 혼자 캔 맥주 하나 따는 걸로 대신하는 저녁도 있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들의 밥상에는 원래 저마다의 색이 있었던 것 같아. 누군가의 밥상은 노을빛 같고, 누군가의 밥상은 들판 같고, 누군가의 밥상은 분주한 아침 같은 색을 가지고 있지. 그래서 엄마는 색깔 쌀을 볼 때마다 사람들의 밥상을 떠올려. 밥상이 모두 다르듯 사람들의 삶도 모두 다르잖아. 그리고 그 다름이 모여 세상을 더 맛깔스레 만든다고 생각해.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낸 사람이 마주하는 밥상은 그 자체로 충분히 귀하지. 거기에 작은 색 하나를 더하는 맛은 그 사람의 하루를 조금 더 다정하게 대접하는 일처럼 느껴져. 꼭 비싼 재료가 아니어도, 거창한 조리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야. 작은 호기심과 약간의 수고만 있어도 식탁은 금세 달라져. 그런 작은 인정을 마주하는 순간들이 살아가는 맛을 느끼게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일상에서 ‘살맛’을 찾는 일은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닌 것 같아. 최근 엄마가 본 영화 <왕과 사는 남자>도 그랬고, 드라마 <취사병 전설이 되다>도 그랬어. 시대도 다르고 이야기도 다르지만, 이상하게 엄마 눈에는 밥상이 먼저 들어오더라. 누군가를 위해 밥을 짓는 사람, 그 밥을 기다리는 사람, 함께 둘러앉아 먹는 사람들. 결국 사람을 이어주는 건 거창한 사건보다 그런 밥상 한 끼였어.


엄마는 그 장면들을 보면서 자꾸 식탁을 떠올렸어. 음식을 요리할 때는 만드는 사람의 것이지만, 식탁에 음식이 올라가는 순간부터는 먹는 사람의 시간이 시작되잖아. 그 두 세계가 만나는 자리가 바로 밥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거창한 성공이나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그런 만남이 쌓여 때로는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 평범한 식탁이지만 그 안에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는 것. AI가 대신해 줄 수 없는 맛, 엄마는 그런 삶이 살맛 나는 삶이라고 생각해. 



#3. 이 여름, 너는 어떤 색을 만나게 될까?


여름을 열어준 6월도 벌써 며칠 안 남았네?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고, 너는 대학에 들어간 뒤 첫 여름방학을 맞았고. 시간이 참 빠르다. 그렇지?


엄마는 네가 이번 여름에 어떤 계획을 세우고 무엇을 성취할지보다 어떤 색깔을 가진 시간을 보내게 될지가 더 궁금해.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어떤 장소를 좋아하게 될까. 어떤 이야기에 웃게 될까. 어떤 고민을 하게 될까. 그리고 어떤 밥상 앞에 앉게 될까…. 그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게 되겠지. 엄마는 네가 이번 여름에 너만의 색을 하나씩 만났으면 좋겠어. 엄마는 밥상에 색을 입히는 재미를 알게 되었고, 너는 세상 속에서 너만의 색을 만들어갈 나이가 되었으니까.


이 여름이 끝날 무렵에는 네가 어떤 색을 만나고 왔는지, 엄마는 또 어떤 색의 밥을 지어 먹었는지 함께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마도 그 시간 안에서 우리가 만난 살맛도 꺼내 놓겠지?


아!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너를 위해 하얀 쌀밥을 지을 거야. 


[사진: 밥상에 색을 입히다 Ⓒ뽀기미] 



1 댓글
06.25 13:39  
아 저 칼라 밥이라니. . .김밥도 아트가 될수 있겠단. . .하여간 온갖 아이디어가 떠 오르는 밥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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