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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스타급 환대”…젠슨 황에 열광하는 이유

채문석| |댓글 0 | 조회수 62

6월 초순 대한민국을 가장 뜨겁게 달군 인물은 아이돌 그룹도, 대선주자급 정치인도 아니었다. 인공지능(AI) 생태계의 절대적 설계자이자 엔비디아를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올려놓은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다.


지난해 10월에 이어 다시 한국을 찾은 그의 행보는 말 그대로 ‘신드롬’ 그 자체였다. 입국하자마자 PC방을 찾는 파격을 선보이더니, 홍대 인근 삼겹살집에서 SK, LG, 네이버 등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과 소맥을 곁들인 ‘삼소 회동’을 가졌다. 이어 치킨집으로 자리를 옮겨 ‘치맥 회동’을 이어갔고 다음 날엔 프로야구 마운드에 올라 시구를 하기도 했다. 대학생들과의 격의 없는 대화까지, 4박 5일간 이어진 그의 광폭 행보에는 늘 구름 인파가 몰려들었다.


외신조차 “글로벌 테크 기업의 CEO가 록스타급 환영을 받았다”며 주목했다. 그의 동선을 실시간 지도와 타임라인으로 제공하는 웹사이트 ‘젠슨 황의 발자취’는 순식간에 10만 명 넘는 방문자를 끌어모았고, 사이트 화면에는 엔비디아 관련 주가 흐름이 실시간으로 요동쳤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왜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이 60대 CEO에게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 6월 5일 홍익대 인근 삼겹살 회동, 사진 : 뉴스1 >


재벌 총수와 '삼소 회동', 청년들을 울린 멘토링


그의 방한 행보를 뜯어보면 한국인의 정서와 서민적 감성을 절묘하게 파고드는 치밀한 기획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가장 대중적인 공간인 삼겹살집과 치킨집으로 내로라하는 재벌 회장들을 불러내고, 그 거물들이 직접 집게를 잡고 고기를 굽게 만드는 전대미문의 장면을 연출했다. 격식을 깨부수는 특유의 시원시원함과 소탈함, 그리고 대만계 이민자로서 바닥에서부터 일구어낸 성공 스토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서사가 되어 대중을 매료시켰다.


더 큰 매력은 그가 던진 메시지의 진정성에 있었다. 방한 중 출연한 인기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2025년과 2026년을 통틀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청년 세대의 폭발적인 반응을 증명했다. 그는 방송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기꺼이 고생을 감수해야 한다”며 실패의 자양분을 역설했고, “똑똑한 사람보다는 인격을 갖춘 사람, 회복탄력성이 있는 사람을 찾는다”며 기술 이면의 인간적 가치를 강조했다.


진행자 유재석을 향해 “경청할 줄 아는 ‘MC 챔피언’”이라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서는 거만함 대신 상대에 대한 깊은 존중이 묻어났다. 거대 빅테크의 독점적 권력자가 아닌, 인생의 혜안을 나누는 따뜻한 멘토의 모습에 2030세대는 깊이 위로받고 공감한 것이다.


사진 왼쪽 : 유퀴즈 공식 인스타그램 / 사진 오른쪽 : 서울대뉴스 >
 

피지컬 AI 거점 노리는 엔비디아의 치밀한 전략


물론 젠슨 황은 방한 직전 대만에서도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하지만 대만의 열광에는 ‘태어난 고향’이라는 민족적 자부심과 금의환향의 정서가 깔려 있다. 반면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국 청년들이 보여준 폭발적 반응은 우리가 미래 기술의 최전선과 그 주역의 등장에 얼마나 목말라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뜨거운 환호 이면에 감춰진 냉혹한 비즈니스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젠슨 황은 본질적으로 철저하고 치밀한 기업인이다. 그가 한국을 연이어 찾은 진짜 목적은 엔비디아가 미래 생존 카드로 점찍은 ‘피지컬 AI’(제조 및 로봇 중심의 물리적 AI) 생태계 선점에 있다. 한국을 자신들의 피지컬 AI를 구현할 강력한 하드웨어 공급처이자 생산 인프라 거점으로 삼으려는 고도의 전략적 포석인 셈이다.


이 대목에서 묘한 기시감이 스친다. 과거 김대중 정부부터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던 전자정부 구축과 국가정보화 열풍 당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창업자와 스티브 발머 CEO가 한국을 제집 드나들듯 찾았던 기억이다. 그들 역시 대통령을 만나고 재벌 회장들과 비공개 회동을 하며 한국 시장을 MS 생태계 아래 두려 했다.


반도체 강국 대한민국의 무거운 숙제


이제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대한민국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차려놓은 잔칫상의 매력적인 하드웨어 공급 기지이자, 그들이 파는 플랫폼의 열광적인 소비처로만 남을 것인가.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기반을 갖추고 있으며, 소프트웨어 역량부터 첨단 하이테크 인프라까지 모두 보유한,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나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래 판도를 바꿀 피지컬 AI 분야에서 아직 우리만의 주도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 반도체 제조의 거대 산맥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보유한 나라다. 기술력과 인재의 밀도는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왜 우리에겐 세계 시장의 판을 짜고 패러다임을 설계하는 젠슨 황 같은 혁신적인 CEO가 나오지 못하는가. 수직계열화된 완고한 대기업 문화,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하지 않는 경직된 사회 구조가 젊은 천재들의 모험심과 야성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뼈아프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젠슨 황 신드롬은 한국 사회에 무거운 숙제를 남겼다. 이제는 그를 향한 환호를 넘어, 냉철한 우리의 대비책을 세울 때다. 머지않은 미래에 글로벌 시가총액 최상위권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한국 기업이 탄생하기를, 그리하여 그 기업을 이끄는 한국의 '젊은 혁신가'가 전 세계 청년들의 우상이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지금 불안한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우리 젊은 세대에게 기성세대가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희망이자 대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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