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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의 광주 최초를 찾아라] 광주·전남 출신, 최초 지리학과 교수 이정면

김경수| |댓글 2 | 조회수 448

< 이정면 교수 대학재직·학회·답사 때 모습 > 


2025년 말 전국대학교 지리학과·지리교육과는 8·17개교다. 전임교수는 1946년 설립 서울대 지리교육과와 최다 13인 경희대 지리학과를 비롯하여 154인이다. 교육대학교 10개교 16인과 이화여대 3인의 사회교육과 지리전공 포함이다.


2026년 초 광주·전남에 지리관련 학과는 전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지리학과와 사범대학 지리교육과로 전임교수는 12인이다. 전대문화전문대학원과 광주교대는 각 1인이다. 광주·전남출신 최초 지리학과 교수는 이정면으로 1960년 4월 경희대학교에 부임한다.


이교수는 1925년 2월 23일 광주군 서방면 우산리에서 출생한다. 부는 훈장 전주이씨 태천(李泰川), 모는 구례봉북생이며, 4남2녀 중 다섯째로 여겨진다. 1997년 별세한 고영자(高英子)와 슬하 2남(도일·경창)1녀(예숙)를 두고, 2021년 11월 96세로 미국에서 영면했다.


< 이정면 교수 어린시절 광주 잣고개 사진·서방면 일대지도와 1970·1980년대 광주·구례방문 때 모습 >


1940년 광주서방공립심상소(효동초)학교 졸업 당시 본적은 광주부 소화정(계림동) 386번지다. 광주교대 전신 전남도립광주사범학교 심상과(5년제) 3회로 1945년 3월 20일 마치고, 구례중앙·광주수창공립국민학교에서 선생을 한다.


1946년 교사를 그만두고, 광사본과(光師本科) 1회로 들어가 이듬해 수료한다. 청화스님(강호성)과 소설가 이의로가 클래스메이트였다. 서울대 사범대학 지리교육과(1947년8월~1951년9월) 4회(4인)로 이찬 교수와 함께 졸업한다. 1953년 3월까지 휘문고 교사로 19개월 근무한다.


1956년 서울대학원에서 지리학 최초 석사논문(서울시 채소와 연료에 관한 지리학적 고찰)을 받는다. 1961년 2월 미국 미시간대학(Ann Arbor)에서 ‘Recent Population Patterns and Trends in the Republic of Korea’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1967년 5월까지 경희대에 재직하면서 경북대 지리교육과 출강과 한국종합기술공사 지리부장·이사를 맡는다. 1967년 6월~1970년 8월 국립말레이시아대학 초빙교수 및 교수, 1970년 9월~1972년 6월 캘리포니아 프레스노(Fresno)대학 초빙교수를 한다.


그해 7월부터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유타대학교 지리학과에서 2002년까지 정년연장, 종신교수로 임한다. 1980년대 일본 츠쿠바(筑波)대 지역연구과(1980년4월~1981년2월) 초빙교수, 호세이(法政)대(1983년4월~1984년1월) 객원교수로도 활동했다.


1985년 한국지리교육학회 발행 ‘지리학 연구 제10집(지리학의 이론과 응용):숙헌(叔軒) 이정면(李廷冕)박사 회갑기념특집호’는 1,173쪽 분량으로 본인의 ‘고대 일본의 제철기술(특히 韓系이주민과 관련하여)외 국내외 학계 60인 주요논문이 수록돼 있다.


1997년 예향2월호에 ‘추억의 사진 한 장(1977년9월전대)’을 소개하며, 오병문 장관은 썼다. 유타대 지리학과 15인 교수 중 유일 외국인이며, 종합평가에서 언제나 최우수평가를 받은 공적에 정년이후 원하는 대로 근무하라는 특혜...교수위의 교수로 우리학자·교수 귀감.


2016년 펴낸 대한지리학회70년사, 성신여대 최기엽 명예교수 글을 본다. 위성사진·원격탐사 최초 국내도입과 토지조사·국토개발활용, 인구지리학 연장선으로 한민족의 유이민(流移民)·아리랑 연구...유타주 초대한인회장...사생활은 근검·절약·겸손, 후배 편지에 장문 회신을 준다.


< 이정면 교수 논문발표 학술지·저서와 내용 >


이교수가 남긴 21세기 주요저서를 나열한다. 록키산맥에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미 중서부 산간지방을 중심으로 한국인 미국 초기 이민사 서설(2003최혁共著), 한 지리학자의 아리랑 기행(2007), Arirang of Korea:Han, Sorrws and Hope(2013), 고대 한일 관계사의 진실(2014), 누이야 시베리아에 가봐(2015서무송·이창식共著), Colors of Arirang(2017류승호·류승률·서용순共著).


지상인터뷰에 지리공부에 반하게 했던 사범학교 선생 대목이 있다(분필로 쓱쓱 지도를 그리며 칠판에 세상을 앉혀 놓는 것을 보고 매혹당했다). 미츠하타(光畑正夫) 교유(敎諭)로 짐작된다.


영문판 저서, 아리랑은 고향, 광주 잣고개에서 출발이다(나의 소년시절). 요약한다. 형과 땔감을 구하러 여섯 살 때부터 잣고개를 넘었다. 산림감독 눈을 피하려고 돌아다니느라 고단했다. 주막을 거쳐 왕래하던 나그네들이 부른 아리랑고개 귀동냥을 기억 속에 품어왔다.


이박사의 책 속에 배인 몇 대목과 사연을 옮긴다. 청풍마을, 밤실 계곡물 아름다움과 친구 김수호(광주우체국장子)...일본군대에 징집돼 부대로 가는 버스 안에서 광복을 맞았고, 외무고등고시준비차 여수 절에서 한국전쟁통...신탁통치반대 북동성당 근처 집회 참여와 학우 최동섭의 총상 소식을 듣고, 경양 못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 장보웅 교수 초청으로 지난 세기말 전남대학교 대학원 지리학과도 방문·강의했다. >


나경민 장학사와 김찬삼 교수와 각별한 인연...이태규 교수가 전한 ‘조개입(말조심)! 입은 하나요 귀는 둘이니 많이 듣고 말은 적게하라’, 이국생활에서 ‘백 번 참으면 덕이 있다(百忍有德)’로 집약된다. 2005년 진도아리랑 취재차 광사동창 의신면 출신 박덕균 소식, 문화원장 박병훈, 박종기 기념비와 부친 박덕인 명창 노래감탄! 1897년 무정 정만조는 시(詩)10수를 지었다.


사람물건, 인물(人物) 공부에는 15적(戶·地·學·軍·業·金·稅·病·犯·宗·筆·行·言·黨·墓籍)자료가 바탕이다. 10만㎞ 대장정, 숙헌석학은 아리랑에 빠져들수록 여러 학문을 두루 아우르는 ‘통섭(統攝Consilience)’, 한민족을 하나로 묶어준 민족의 노래가 아리랑이란다. 대지리학자 만세.



2 댓글
오창훈 01.12 12:44  
이무성 01.12 16:14  
대단헙니다.
광주 최초를  흥미롭게 발표 등 상상할 수 없는 열정으로  부지런헌 발품의 결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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