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진의 로컬&지역발전 이야기] 광주 원도심 ‘전자 플리마켓’을 제안하며
인트로
광주 원도심에 있는 전자상가(반도,금남)는 ‘80년대 광주,전남,전북 지역의 전자기기 유통의 메카로 탄생하였다. ’9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지만 2000년대 들어 상무지구 등 신도심 개발과 온라인쇼핑, 홈쇼핑 등 유통 구조의 변화로 지금껏 쇠락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30여 년이 더 지난 지금 전자상가(전자의 거리) 모습은 충장로나 예술의 거리 등 시내 원도심 여기저기가 다 그렇듯이 유동인구도 크게 줄고 건물은 노후화되고 공실은 계속 늘어만 가고 있다. 젊었던 시절, 필자는 이곳에서 트랜지스터나 소형 스피커 등 부품을 사서 라디오를 조립하기도 하였고 워크맨을 사서 팝송을 들었던 아련한 추억이 깃든 곳이어서 그런지 더욱더 안타까운 마음이다.
요즘은 쿠팡이나 네이버쇼핑, 테무, 알리익스프레스 등 온라인 쇼핑으로 가전제품이나 컴퓨터용품을 사는 것이 대세가 되었지만, 그래도 여기만의 특색과 차별성을 갖추고 방문인구, 구매인구가 많아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침체된 상권 회복과 활성화 차원에서 상인들과 주민들 그리고 지자체가 머리를 맞대고 바람직한 방안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필자는 우선은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작은 아이디어이지만 ‘(가칭) 금남·반도 레트로 전자 페스타(Retro Electronics Flea Market, 약칭 : 전자플리마켓)‘을 정기적으로 열 것을 제안한다.
그동안 우리는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수많은 예산을 투입하며 건물을 새로 짓거나 벽화를 그리는 등의 물리적 환경 개선에 치중해 왔다. 그러나 하드웨어 중심의 탑다운(Top-down) 방식은 반짝하는 효과를 낼 뿐, 지속 가능한 활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사례들을 여기저기서 많이 목격하였다.
도시재생의 진정한 의미는 과거의 유산을 완전히 부수고 새로 짓는 ‘개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이 가진 고유한 스토리와 정체성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사람을 모으고 경제를 순환시키는 ‘재창조’에 있다.(물론 전자상가(반도, 금남)의 경우 녹슬은 안내판, 페인트칠 벗겨진 건물외벽 그리고 실내 이용 환경, 주차편의성, 인접상권 환경정비 등 최소한의 리모델링은 반드시 진행되어야 한다)
필자가 제안해보는 ‘전자 플리마켓’은 원도심의 낡고 오래된 기술의 터전을 지켜온 상인들과 주민들이 주도하여 만들어가자는 프로젝트이다. ‘전자 플리마켓’ 추진과정에서 상권공동체를 회복하고 지역 활력의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
공간의 재해석
요즘 각광받고 있는 소비 트렌드중에 '레트로(Retro)'와 '뉴트로(Newtro)'가 있다. 기성세대에게는 향수를, MZ세대를 비롯한 젊은 층에게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신선함과 독특함을 선사하는 문화적 키워드다. 금남전자상가와 반도전자상가는 그 자체가 광주의 전자 산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살아있는 박물관’이자, 레트로 감성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독보적인 자산이다. 전자 플리마켓은 이러한 '레트로(Retro)'라는 강력한 문화적 무기로서의 공간적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면 좋겠다.
전자 플리마켓의 콘텐츠
전자 플리마켓의 콘텐츠를 어떻게 구성할까 ? ‘마켓’을 통해 단순한 중고 장터나 신제품 할인 부스가 아니고 상가 상인들이 직접 참여하여 빈티지 가전, LP 등 오디오, 레트로 게임기, DIY 전자 키트 등을 선보이는 특화 부스를 통해 오직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차별성있는 콘텐츠로 제공하여야 한다. 겉보기에는 오래되고 쓸모없이 보였던 전자상가의 자산들이 ‘희귀함’과 ‘아날로그 감성’이라는 가치를 입고 새로운 상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청년 공예품, 핸드메이드 소품, 굿즈, 로컬 먹거리 등을 판매하는 일반 셀러들의 부스들도 조화롭게 배치함으로써 보다 풍성한 행사를 만들고 LP체험이나 DJ가 진행하는 뮤직비디오쇼, 디지털 버스킹 등 전자상가만의 특색을 반영한 콘텐츠로 재미를 더할 수 있다.
행사날에는 전자상가앞 도로(반도전자상가-금남전자상가 구간)에 차 없는 거리를 조성해 시민들이 자유롭게 걷고, 보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금남·반도상가 일대가 일시적인 행사 공간을 넘어, 지역의 새로운 문화적 이벤트 명소가 될 수도 있다.
상생과 순환의 경제 효과
축제나 행사는 일회성 소비로 끝나지 않고, 실제 전자상가와 인근 소상공인들의 매출 증대와 지역 경제 순환으로 이어져야 한다. ‘전자 플리마켓’은 이를 위해 다양한 상생 프로그램 설계가 필요하다.
첫째는 ‘상가 특별 세일전’의 병행이다. 플리마켓 부스 행사에만 인파가 머무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행사 당일 전자상가 내 입점 점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원데이 특별 할인 행사'를 함께 개최한다. 외부의 부스 행사가 자연스럽게 기존 상가 내부로 고객을 유인하는 도어 오프너(Door Opener) 역할을 하도록 만든 것이다.
둘째는 소비자를 유인하는 ‘선순환식 인센티브 제도’다. 예를 들면 행사장과 전자상가에서 3만원 이상 구매한 고객에게 1만원권 온누리상품권 또는 전자상가 상품권을 증정하는 ‘상품권 환급 이벤트(선착순 200명정도)’는 매우 직관적이면서도 집객 활성화 툴이 될 수 있다.
환급받은 상품권은 다시 전자상가나 전통시장, 골목상권에서 소비되므로, 소액의 예산(200만 원 상당)으로 큰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1만 원 이상 구매자에게 주어지는 경품 추첨 행사에 상인들이 직접 태블릿이나 블루투스 스피커 등 상가 기증 제품을 내놓는 프로그램 역시, 고객들에게 좋은 반향을 얻을 수 있다.
대학(RISE), 지자체의 협력
‘전자 플리마켓’ 행사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포인트는 바로 ‘지자체, 대학과의 협력’이다. 소규모 축제임에도 불구하고, 광주광역시, 동구청, 조선대학교, 전남대학교, 조선이공대 등 대학(예시 : RISE사업단, 메이커스페이스사업단등), 광주관광공사, 동구문화관광재단 등이 참여한다면 보다 큰 성과를 얻어낼 수 있다.
□ 대학과의 연계
대학이 보유한 역량을 전자상가와 함께 하겠다는 지역협력의 가치가 이번 행사에서 구현되면 좋겠다. 조선대, 전남대, 조선이공대, 호남대, 광주대 등 청년들이 참여하는 ‘청년 기술 메이커스 부스’는 대학생들의 캡스톤 디자인 결과물(로봇, 스마트 가전 시제품)을 전시할 수도 있으며 시민들의 고장 난 소형 가전을 무상 수리해 주는 ‘전자 주치의’ 팝업 부스도 가능할 수 있다.
과거 전자상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노련한 상인들의 ‘숙련기술’과 대학생들의 ‘첨단 아이디어’가 만날 수 있는 세대 융합의 장도 필요하다. 청년들이 기획하는 ‘인디전기 오락실’이나 e-스포츠 체험존은 원도심을 지루한 공간으로 인식하던 MZ나 알파세대들의 발길을 자연스럽게 돌려놓을 것이다.
□ 지자체 관광 인프라와의 융합
지속 가능한 지역 활성화를 위해서는 전자상가라는 로컬 단위의 행사가 고립된 섬처럼 존재해서는 안 되며, 광주관광공사나 동구문화관광재단과 연계한 관광 벨트전략과도 맞물려야 한다.
‘광주아트패스(Gwangju Art Pass)’ 연계 전략도 필요한데, 광주의 예술·관광 통합 이용권인 광주아트패스 홍보부스를 전자플리마켓 현장에 운영하고, 아트패스 소지자가 본 플리마켓에 방문할 때 할인 쿠폰이나 웰컴 굿즈를 제공하는 리워드 시스템은 광주를 찾은 문화 예술 관광객을 유입시키는 새로운 관광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맺는말
지역 활성화는 수백억 원짜리 거대한 랜드마크 건물을 짓는다고 금새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민과 상인이 빠진 개발 기획은 결국 영혼 없는 껍데기만 남길 뿐이다. 원도심의 전자 플리마켓이 추구해야할 진짜 가치는 작은 예산 속에서도 상인과 주민들의 자발적 의지와 주도적인 기획, 청년들의 참여, 지자체의 행정 지원, 그리고 유관기관들의 마케팅협력이 하나로 어우어져 성과를 창출한다는 데 있다.
행사는 단순히 하루 동안 물건을 사고파는 이벤트가 아니다. 쇠퇴해 가던 원도심의 전자상가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상가의 역사를 반영한 독특한 콘텐츠와 청년 기술이 융합된 복합문화권역’으로 재정의될 수 있는지 가능성을 타겟팅하는 일종의 ‘리빙랩(Living Lab, 생활실험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자플리마켓 행사 개최를 통해 향후 금남·반도전자상가 일대를 상시적인 기술 기반 로컬 크리에이터 창업 공간이나, 테크중심 문화 재생 지구로 발전시키는 작은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낙후된 전자상가가 화려했던 8~90년대 전자제품 장터의 기억 위에 새로운 전환점을 찾는 ‘전자 플리마켓’으로 그 서막이 열리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