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_06 김피디의 불펀한 생각] 찰리브라운에게서 배우는 탱크데이 논란

< 탱크데이 논란 >
올해도 광주의 오월은 시끌벅적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의 추모와 헌사가 어느 때보다 빈번했지만,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은 5.18 역사 왜곡과 지역 혐오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그러던 중 동구 주민, 학생, 직장인 등에게 권장 도서 한 권을 무료로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이를 통해 읽은 책이 <친애하는 슐츠씨>이다. 저자는 미국식 문화 코드와 맥락을 친절하게 곁들이면서, 현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지역 차별과 일베 문화 확산 문제에 대해 깊이 돌아볼 수 있도록 다양한 화두를 던진다.

< 친애하는 슐츠씨 책 표지 >
한 권의 책이 던진 질문
책의 여러 꼭지 중 하나인 ‘친애하는 슐츠씨’는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로 친숙한 전 세계적인 인기 만화 <피너츠>에 얽힌 일화를 소개한다. 1968년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암살당한 직후, 작가 찰스 슐츠는 해리엇 글릭먼이라는 여성으로부터 찰리 브라운의 친구로 흑인 아이 캐릭터를 등장시켜 달라는 간곡한 편지를 받는다.
< 찰리 브라운과 프랭클린 >
처음에는 조심스러웠다. 선의로 넣은 캐릭터가 오히려 흑인을 대상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여러 차례 이어진 설득과 편지 교환 끝에 마침내 평범한 흑인 소년 '프랭클린 암스트롱'을 탄생시켰다.
슐츠는 이 문제를 매우 영리하고 세심하게 다뤘다. 흑인 소년 ‘프랭클린’은 찰리 브라운과 해수욕장에서 우연히 만나 모래성을 쌓고 함께 물놀이를 하는 평범한 친구였다. 특별히 똑똑하지도, 우스꽝스럽지도 않았다.
캐릭터에 대한 논쟁을 최소화하면서도, 흑인과 백인이 공공 수영장을 함께 쓸 수 없었던 당시의 사회적 차별을 우회적으로 깨뜨리기 위한 설정이었다. 관점에 따라선, 형식적인 끼워 넣기로 비판할 수 있지만, 오늘날 프랭클린은 콘텐츠 업계에서 일하려는 흑인 대학생들에게 인턴십과 멘토링을 제공하는 프로젝트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처벌만으로는 혐오를 이길 수 없다
프랭클린이 보여준 '일상으로의 스며듦'은 일베 문화가 일상의 놀이처럼 퍼지고,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훼와 조롱이 반복되는 한국 사회에 큰 시사점을 던진다.
차별과 혐오 언행이 불거질 때마다 우리는 일시적으로 분노하고, 그때마다 강력한 처벌과 법 개정을 요구한다. 하지만, 감시와 처벌만으론 뚜렷한 한계가 있음을 체감한다. 이제는 접근 방식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호남의 지역성과 5.18의 가치를 거창한 구호가 아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생활 문화'로 향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 전라도 사투리 숏폼인플루언서 이우곤씨 사진 : 이우곤 티톡 >
마치 경상도 사투리나 부산 등의 로컬 문화는 동경과 낭만의 대상, 핫플레이스로 소개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까지 전라도의 로컬리티는 대중문화에서 아예 배제되거나, 차별에 항의하고 분노하는 곳으로만 한정적으로 소비된다. 심지어 드라마 속 교활한 배신자나 악역이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관습적 묘사는 아직도 빈번하다. 이런 콘텐츠를 보고 자란 세대가 과연 지역 차별에 대해 올바른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우리는 슐츠의 마음을 움직였던 글릭먼의 간곡한 심정으로, 주요 콘텐츠 제작자와 회사에 전라도의 언어, 문화, 인물, 공간을 더 자주 노출해달라고 간곡한 메시지라도 보내야 한다. (그만큼 접근 방식을 달리 해야 한다는 뜻이다)
호남의 감각을 오늘의 매력으로
특히 문화 산업을 육성하는 공공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억지 사투리와 피상적인 명소와 맛집 소개로 점철된 콘텐츠에 예산을 쏟을 것이 아니라, 우리 지역의 말, 음식, 거리, 음악, 일하고, 쉬고, 관계 맺는 방식이 섬세하게 포착되고, 그 안의 멋과 낭만이 자연스럽게 확산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기아타이거즈, 광주FC 같은 로컬 스포츠팀의 문화적 힘을 더 키우고, 창억떡처럼 지역의 감각을 오늘의 상품으로 바꾸는 로컬 크리에이터도 더 발굴해야 한다. 순천과 여수처럼 이미 대중적 매력을 얻은 장소를 더 깊고 넓게 연결하고, 아직 조명받지 못한 동네와 장면들도 새로운 핫플로 자라게 함으로써 접점을 넓혀 나가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호남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 일이다. 더 자주 보이고, 더 매력적으로 경험되고, 더 자연스럽게 좋아지게 만들어야 한다.
오월을 가장 친밀한 콘텐츠로
"Big what, small how(목표는 거대하게, 방법은 작고 구체적으로)"라는 말이 있다. 5.18 왜곡과 지역 차별을 예방하는 길도 마찬가지다. 박물관과 묘지에 무겁게 박제된 오월과 광주를, 대중 저변의 가장 친밀하고 매력적인 콘텐츠로 재생산해 내야 한다.
프랭클린이 백인 아이들과 천진난만하게 물놀이를 하며 굳건했던 편견의 벽을 허물었듯, 호남의 낭만과 일상이 우리의 생활 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때 우리는 일베의 혐오 문화를 몰아내는 진지전에서 마침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