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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쓰는 레시피] ep5. 내 몫보다 조금 더 짓는 주먹밥

곽복임| |댓글 0 | 조회수 72


 



〈딸에게 쓰는 레시피〉는 엄마가 계절의 재료와 사회의 온도를 살펴 딸에게 응원 한 그릇 내놓는 엄마카세다.


#5월의 광주는 조금 특별해서


딸~! 엄마 생각엔 5월의 광주는 조금 특별한 것 같아. 장미가 피고, 햇살은 점점 환해지는데 이 도시에서는 묵념 사이렌이 울린다. 사람들은 축제를 준비하다가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일상을 살다가도 오래된 기억 앞에 잠깐 마음을 내려놓는 모습을 종종 만날 수 있어. 광주는 늘 그런 도시였던 것 같다. 현재를 살아가면서도 기억을 같이 데리고 걷는 도시.


얼마 전에는 또 어떤 기업 이벤트 때문에 시끄러웠지. 많은 사람이 화를 냈고, 허탈해했고. 아마 누군가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아픈 시간을 너무 가볍게 소비해 버린 느낌이었을 거야.


근데 말이야. 엄마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꼭 거창한 장면보다 이상하게 다른 것들이 먼저 떠올라. 누군가 급하게 쥐여줬을 주먹밥, 허겁지겁 끓였을 국 한 냄비, “얼른~ 일단 이것부터 생캐~.” 하면서 건넸을 물 한 컵 같은 것들. 결국 사람을 살리는 건 그런 생활의 온도였을 테니까.


광주를 얘기할 때 가끔 ‘5·18유전자’라는 표현을 쓰곤 해. 그런데 엄마는 그 유전자가 꼭 광주 사람에게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누군가 힘들어 보이면 밥부터 먹이려 하는 마음. 자기 몫보다 조금 더 짓고, 혼자 두지 않으려는 마음. 그런 건 사실 사람 안에 원래 조금씩 있는 마음 아닐까 싶다. 광주는 그 마음이 가장 절박했던 순간을 오래 기억하는 도시 아닐까?



#외할머니는 늘 한 냄비를 더 끓였어.


10년 전에 돌아가신 너의 외할머니는 몇 가지 음식을 할 때 꼭 양을 아주 많이 하셨어. 어릴 때 엄마는 그게 그냥 우리 엄마가 큰손이라 그런 줄 알았어. 국을 끓여도 큰 솥으로 가득, 나물을 무쳐도 대야째 한가득. 김치라도 담그는 날이면 마당이 아주 난리였지. 근데 이상하게 그 음식들은 우리 집 냉장고에만 가득 채워지진 않았어.


“이거, 옆에 할머니한테 드리고 와.”

“건너집 할아버지 혼자 계시니까 반찬 좀 넣어드리자.”

“○○네 엄마 몸 안 좋다던데 국 한 냄비 가져다드려.”


외할머니는 그 심부름을 늘 엄마에게 시키셨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음식의 양이 아니라 마음의 크기였나 봐. 혼자 밥 먹는 사람 그냥 못 지나치는 마음, 누가 끼니를 대충 때웠다고 그러면 괜히 신경 쓰이는 마음. 외할머니는 그런 사람이었어. 엄마의 엄마가 안 계신 지 10년이 지나서야 외할머니의 마음을 조금 알 것도 같아.



#근데 엄마도 그렇게 살고 있더라


신기하지? 엄마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한 적도 없고, 똑 닮아야지 생각한 적도 없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나도 똑같이 하고 있더라. 반찬을 할 때 자꾸 양이 많아지고 딱 식구 수대로 계산이 안 돼. 끼니 거른 누가 올 수도 있고, 한 통 싸서 보내고 싶은 사람이 생길 수도 있어서 자꾸 조금씩 더 하고 있네.


더 신기한 건, 너도 그렇다는 거. 얼마 전에 엄마가 해준 반찬들 가지고 네가 주먹밥 만들었잖아. 노릇노릇하게 구워서 한가득 올려놓은 거 보는데 엄마가 괜히 웃음이 나더라. 아니,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또 많이 만들었냐고. 근데 생각해 보면 너 원래 그렇지. 빵이나 과자를 만들 때도 그렇고, 디저트 만들 때도 그렇고, 늘 혼자 먹을 양은 아니었지. 친구들 나눠줄 몫, 가족 먹을 몫, 누군가에게 선물할 몫까지 자연스럽게 양이 커져 있더라고. 그 모습을 보는데 엄마는 좀 신기했어. 아, 이게 이렇게 전해지는구나 싶어서.


돌봄이라는 게 꼭 “착하게 살아라.”, “남 도와라.” 같은 말로 가르쳐지는 건 아닌가 봐. 부엌에서 보고 자란 풍경, 냄비 크기, 반찬통 개수, ‘조금 더 할까?’ 하던 생각들. 그런 것들이 사람 안에 오래 남는 건가 봐.



#내 몫보다 조금 더 짓는 마음


살다 보면 사람은 생각보다 자주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아.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그래. 하루 종일 마음이 시끄러운 날도 있고, 사람한테 상처받는 날도 있고, 이유 없이 기운이 꺼지는 날도 있잖아. 그런 날 사람을 다시 일으키는 건 엄청 거창한 게 아닐 때가 많지. “밥 먹었어?” 그 말 한마디, 아무 말 없이 앞에 놓인 따뜻한 국 한 그릇, 대충 뭉친 것 같은데 이상하게 힘이 나는 주먹밥 같은 것. 엄마는 요즘 그런 생각을 자주 해. 세상을 거창하게 구하지는 못해도 오늘 하루, 한 사람 굶기지 않는 마음 정도는 지키면서 살고 싶다고.


세상은 자꾸 상처를 더 꺼내 보이라고 등을 떠미는 것 같은데, 꼭 그래야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거든. 누가 힘들어 보일 때 무슨 일이냐고 끝까지 캐묻기보다 “일단 밥 먹자.” 하고 조용히 곁에 앉아주는 마음. 엄마는 그런 마음이 좋더라.


한자로 사람 人(인)은 사람이 서로 기대는 형상을 표현한 글자래. 그래서 오늘도 반찬을 조금 넉넉하게 해서 보내. 너에게 기대어 밥 한 끼 같이 챙길 친구와 나누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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