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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상의 시대유감] 우리 안의 ‘악마’

나윤상| |댓글 0 | 조회수 48

얼마 전 탔던 택시 기사님은 방금 전 손님이었던 20대 청년들과의 이야기가 즐거웠던 모양이었다. 그는 이야기의 여운을 잊고 싶지 않은 듯 큰 소리로 말했다.

 

"미국이 이란에게 벙커 미사일로 박살을 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모사드는 역시 세계 최강입니다"


평상시면 대꾸를 하지 않았겠지만 이번에는 참을 수 없었다.


"5⋅18정신을  이야기하는 광주에서 좋아할 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 아닌가요?"


그는 대화가 이어지는 내내 큰 목소리로 자신의 80년 시위 참여와 민주주의를 강변하면서도 가자지구 학살과 미국의 이스라엘 편파적 동조에 대한 나의 견해에 대해서는 쉽사리 동의하지 못했다. 


3일 광주 북구 가족센터 대강당에서 ‘한국전쟁 전⋅후 광주 북구 민간인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 및 위령제’가 열렸다. 광주 북구에서 민간인 희생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노무현 정부 때 시작한 진실화해위원회의 제2차 조사보고서가 지난 5월 종료되면서 밝혀졌다.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일제로부터 해방 이후 6⋅25전쟁 이전까지 이념으로 인한 학살은 남한에서만 대략 50만 명을 헤아린다. 독립 다큐멘터리 구자환 감독의 소위 ‘학살 3부작’은 그 역사적 사실을 고발하고 있지만 본 사람은 극히 드물다.



위령제를 준비했던 관계자도 보지 못했다고 미안해했다. 미안해하는 그에게 구 감독의 다큐 세 편 ‘레드 툼’, ‘해원’, ‘태안’을 소개시켜 줬다. 올 4월 구 감독은 또 다른 민간인 학살 다큐 「장흥1950 : 마을로 간 전쟁」을 개봉했다.


지난 3월 광주시의회에서는 조례 하나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대표 발의됐다. 요즘 광주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자유 총연맹 지원에 관한 조례’가 그것이다.


해당 조례는 행정자치위원회 상임위를 통과한 후 6월에 시의회 본회의에서 상정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시민단체들의 반발 속에서 폐기됐다.


한국자유총연맹은 1954년 이승만에 의해 대한반공연맹으로 창립된 단체로 자유민주주의, 반공을 강조하고 있어 분단세력의 정점에 있는 단체라 할 수 있다.


조례를 대표 발의한 의원들은 대부분 “몰랐다”, “그 점까지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공무원으로서 상부의 지시만 이행했다는 아돌프 아이히만의 이야기는 너무 식상하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도 이제는 너무 많이 들어 듣는 순간 “또 그 이야기야”라는 말이 나온다.


그렇다. 너무나 질린 이야기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 속에서 언제나 존재한다. 최근 광주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 속에 존재하는 ‘악마’는 아마도 무관심과 익숙함일 것이다.


매년 돌아오는 5월은 그저 지나가는 행사의 하나일 뿐이고 일 년 중 딱 그 시기만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의미를 떠올리면 그만이다.


그 무관심과 익숙함은 또다시 건강한 공동체에 작은 균열을 내고 서로를 반목하게 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광주의 무관심과 익숙함은 수십 년간 이어져 온 특정 당에 대한 올 인(All In)의 결과라면 너무 성급한 결론일까?


이제는 광주의 익숙함과 무신경함은 바꿔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1년이 채 남지 않은 지방선거에서 식상한 인물론 등을 빼고 전략적 선택은 어떨지 고민해 볼 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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