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PD의 불펀(Fun)한 생각] ep.4 생성형 AI와 지역소멸
EP.4 생성형 AI와 지역 소멸
불과 두 달 전, 지역에 있는 일러스트 작가와 함께 탁상용 캘린더를 제작했다. 여러 번의 피드백 끝에 나름의 개성과 미감이 담긴 일러스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실사 이미지를 다양한 그림체로 자동 변환해 주는 AI가 등장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제작비는 이전의 5분의 1 수준. 만약 지금 캘린더를 다시 만든다면? 약간의 구독료만 내고, 개성 있는 그림체로 빠르게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러스트 작가는 일거리를 잃었을 테다.
영상 제작도 마찬가지다. 기획, 편집, 자막, 더빙, 심지어 썸네일까지—모든 제작 공정에 AI가 관여하고 있다. 일부 콘텐츠는 AI가 전부를 만들고, 상당한 금액에 판매되기도 한다.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는 분명하다. 인건비는 줄고, 글로벌 플랫폼에 지불하는 AI 구독료는 늘어난다. 효율은 높아지지만, 사람의 자리는 줄어든다. 그리고 그 ‘사람’ 중 다수는 지역에서 일하는 창작자들이다.
또 다른 의미의 지역 소멸 위기
문제는 단지 창작 기회의 감소에 그치지 않는다. AI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콘텐츠를 만든다. 그런데 광주, 주월동 같은 지역은 아예 학습되지 않아서인지, 극도로 왜곡된 정보가 생성된다. 잘못된 이미지, 엉뚱한 문장. 이런 방식으로 로컬은 점점 지워지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지역 소멸'이다. 물리적 인구 감소가 아니라, 디지털 세계에서 존재 자체가 지워지고 있다.
콘텐츠 제작 툴(Tool)도 문제다. 갈수록 국내 구글, 오픈AI 등 글로벌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 제작비가 국외로 빠져나가고, 데이터와 결과물은 다국적 플랫폼에 종속된다. 기술을 쓰면 쓸수록, 우리는 점점 더 지역 바깥을 바라보게 된다. 이런 변화를 감당할 준비는 돼 있는가?
시대 변화 못 따라가는 정치와 행정
안타깝게도, 공공 정책과 제도는 여전히 '서류 채우기'에 머물러 있다. 1인 크리에이터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토목, 건설 입찰 방식을 베낀 복잡한 절차, 창의성보다 정량 기준을 따지는 공모 방식 등은 빠르게 진화하는 창작 생태계에 맞춰 움직이기엔 너무 느리고 무딘 구조다.
정치는 더 문제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채 이념과 지역으로 갈라치고, 첨예한 갈등 위에서 권한을 행사한다. 지역은 어떠한가. 기술 변화에 가장 둔감한 노년 세대가 미래를 결정짓는 구조. 이를 감시하고 견제할 시민 사회조차 미래 비전을 내놓기엔 버거워 보인다.
그 사이 생성형 AI는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왔다. 그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콘텐츠의 주도권, 데이터의 주권, 경제 흐름까지 바꾸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첫 번째 피해자는 늘 그렇듯, 지역이다. 지금 필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누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사용할지에 대한 분명한 감각과 비전이다. 정치가 변해야 한다. 변화에 대응하지 않으면, 그 가장 큰 피해는 로컬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