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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은 그동안 환경, 생태, 지역, 근대사, 문화, 정치 등 삶을 둘러싼 다양한 가치와 의미들을 예술언어로 구현해왔다. 특히 임정희교수는 우주만물이 그 마음과 소통하고 사귀며, 다양하게 관계하고 순환을 이루며 공진한다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의 관점으로 작가의 작업을 해석한 바 있다. 대상과 공명하며 그 기운을 그리고 혼을 달래는 그의 전시는 단순히 예술작품을 거는 양식에서 머물지 않으며, 제의적인 성격을 포괄한다.
이번 전시 《다시 살으라-오는 봄》의 시작은 지난 6월 방문하였던 광주제일고 독립운동 기념탑에서부터이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소년들 속에서 찾은 외조부의 이름은 이진경에게 ‘광주’의 의미를 불러내고 작업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작가는 2021년 이응노의 집에서 펼쳐진 “먼먼산-헤치고 흐르고”와 2022년 “먼먼산-눈은 나리고”를 통하여, 동학과 4.3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수레바퀴 속에 희생되거나, 흔들림 없이 저항한 이들을 소환하는 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올해 2024년의 “다시 살으라” 두 번의 전시 역시 그 맥락을 이어 받는다.
연작 전시는 《다시 살으라-빈 들 속에서》라는 타이틀로, 고대국가의 유적들이 레고랜드 성탑 속에 고요히 묻혀있는 춘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0월 한 달간 ‘양공주’, ‘혼혈아’, ‘6.25’ 등의 작품을 통해 일본제국주의에서 미군 주둔으로 이어지는 연속성 안에서 훼손되고 짓밟힌 우리역사의 단면들을 재해석하고 상처 입은 이들을 치유하는 제사를 지냈다.
이번 광주 ‘오월미술관’과 ‘무등공부방’ 두 군데에서 진행되는 《다시 살으라-오는 봄》은 춘천 전시 작품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보다 확대된 규모로 펼쳐진다. 광주항일학생운동에서부터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저항의 근현대사 속에 ‘오는 봄’을 기다리며 나아간 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특히 붉은 종이에 써내려간 광주 5.18 전남도청 희생자들의 이름들과 광주항일학생운동으로 촉발되었던 전국의 항일학생운동 학교들의 명단, 일본제국주의의 위안부 동원 국가 등 수도 없는 이름들을 적은 작업들은, 그동안 수집하고 연구한 자료를 토대로 역사의 빈칸을 채우고 그 존재들을 하나하나 불러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진경은 작가노트에서, 현재를 ‘아직 오지 않은 봄을 기다리는’ 시대로 규정하며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아직도 이 땅은 불구덩이다.
묻을 수 없고 잊을 수 없는데, 어찌 살아야 하는가?
오는 봄을 기다리며 숨을 다시 고르고
눈을 바로 뜬다.”
이처럼, 사람을 살리기 위해 죽어간 이들에 대한 이진경의 작업은 바로 오늘, 우리가 바라보고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준다. 벽면을 가득 메운 이름들과 그림들 속에서 우리는 시공간적으로 서로 연결되고 얽힌 역사적 실체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를 다시 세우고 보듬어 안는 작가의 생동하는 기운을 광주 시민 모두가 함께할 수 있길 바란다. (정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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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불이 났다.
작업실을 다 태우고 강원도 볕이 안 드는 산비탈로 갔다.
불이 났다.
온 마을을 다 태우고 옆 마을도 탔다.
상한 사람이 많다.
불이 났다.
온 강산이 다 타고, 이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엄한 사람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
불이 났다.
모두가 두려워 머뭇거릴 때, 불길에 뛰어든 사람이 많다.
사람들은 그렇게 한 발씩 사람답게 살자고 애를 썼다.
난리 통에 서로를 돌보고 더운밥을 나누어 먹었다.
그때는 환한 세상이었다.
아직도 이 땅은 불구덩이다.
묻을 수 없고 잊을 수 없는데
어찌 살아야 하는가?
오는 봄을 기다리며
숨을 다시 고르고
눈을 바로 뜬다.
10.24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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