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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렬 - 음식보(飮食譜), 최초로 발굴된 조선시대 전라도 음식 기록

플레이광주 0 283 02.14 14:37


조선요리궁중요리를 쓰고 초기 서울대 가정학과장을 역임했던 손정규(孫貞圭)1948년 창간된 호남문화에 실은 기고문 호남음식예찬에서 원래 전라도 음식이 좋다는 것은 모두가 일컫는 것인데, 온화한 기후도 있거니와 식재료가 유족하기 때문이다. 전라 곡창이라 일컫는 만큼 농산물이 풍부하며, 한겨울에도 생채소를 구할 수 있고 서남해의 특산 해물 또한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이만한 여유가 있으니만큼 미각이 예민하고 음식물에서 심미의 기운이 완연히 나타나 한 가지 음식이라도 공들여 만든다.라고 전라도 음식의 깊은 맛과 다양하고 품위 있음을 그 원인 분석과 더불어 극찬한 바 있다. 손정규뿐 아니라 예로부터 수많은 문인과 풍류가객들이 전라도 음식을 예찬하였고, 지금도 국민 누구나 음식 하면 전라도라는 말을 부정하지 못한다. 



이렇게 뛰어난 음식문화가 전해져 오고 있는 맛의 고장 전라도이지만 한편으로는 뭔지 모를 아쉬움과 허전함이 남아 있었으니, 유독 호남지역에서 저술된 조선시대 음식 기록 문헌이 단 한 편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경기권의 산가요록규합총서, 충청권의 최씨음식법주식시의, 영남권의 수운잡방음식디미방』을 비롯한 다수의 조선시대 음식서가 발굴되었고, 그것들이 국가 유산으로 등재되거나 기념관이 건립되거나 산업화가 추진되는 등 다양한 문화·경제적 활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뭄에 단비처럼 등장한 것이 조선시대에, 전라도에서 쓰인 음식 기록으로는 최초로 발굴된 음식보(飮食譜). 음식보는 나주시 다도면 풍산리 도래마을에 세거해 온 풍산홍씨 창애공파 석애문중의 종가에서 대대로 전해져 온 한글로 작성된 음식 조리서다


조선 영조 임금 대인 1756년에 승정원 좌승지를 지낸 주은(酒隱) 홍수원(1702~1745)의 부인인 숙부인 진원오씨(珍原吳氏, 1698-1770)가 처음 쓰고, 그의 아들로 승정원 동부승지 겸 경연참찬관을 지낸 석애(石崖) 홍봉주(1725~1796)의 부인이자 진원오씨의 며느리인 숙부인 진주정씨(晋州鄭氏, 1736-1802)가 일부 내용을 더해 완성되었다. 숙부인(淑夫人)은 조선시대에 정3품 당상관인 문·무관의 처에게 내린 품계이니 당시 부자가 연속해서 당상관에 오른 이 가문의 부와 권력 그리고 학문적 역량이 이러한 기록물이 쓰이고 전해질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석애(石崖) 문중에서 소장해 오던 고문서들 사이에 섞여 있다가 2021년 가문 소장 고문서 일체를 한국학 호남진흥원에 기탁하는 과정에서 원본이 처음으로 학계에 공개되었는데, 사실 1981년에 일부 학자들이 음식보의 존재를 알린 적이 있었으나 당시에는 전라도 지역에서 쓴 것으로 추정만 했을 뿐 정확한 내용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 음식사 연구자인 박채린의 논문을 통해 집필자, 연대, 지역, 가문 및 내용 등이 제대로 밝혀지게 된 것이다.

 

 <음식보 원전 표지>


13종과 음식 26종 등 총 39종의 술과 음식 조리법이 수록된 음식보에는 이전의 다른 지역 조리서에는 나오지 않는 새로운 음식이 실리고, 음식 이름과 요리법 용어에 전라도 방언이 쓰였으며, 전라도 고유 식재료의 사용과 전라도식 조리법이 기록되는 등 독특한 내용들이 많이 들어 있어 학술적, 문화적 가치가 매우 큰 것으로 밝혀졌다.

 


 <음식보에 실린 모희편 / 교의상화 / 자반>
 

필자는 2023년 여수와 작년 목포에서 개최된 남도음식문화큰잔치 중 종가음식문화관에서 음식보에 수록된 음식과 술을 재현 전시하여 전문가들과 언론으로부터 좋은 평가와 반향을 얻었으며, 작년에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음식보의 가치와 특징에 관한 학술대회의 개최와 더불어 음식보의 완전한 번역과 해제 및 재현 그리고 재현 과정을 영상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아카이브 사업을 아우르는 1단계 연구의 책임연구원으로서 음식보의 기초 연구와 콘텐츠화 작업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 왔다. 향후 연구 성과를 종합한 도서 발간 및 아카이빙 작업이 마무리되면 전라도 음식의 역사성, 전통성에 관한 확고한 근거자료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경제적 활용의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과 종가와 학계, 지역의 문화계 및 산업계가 협력을 통하여 소중한 남도 음식 기록문화 유산 연구의 성과가 잘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음식보에 관한 홍보, 교육, 전시, 체험의 기능을 갖는 음식보 기념관 건립이나 재현 복원 연구가 마무리된 음식 및 술의 상품화 등 구체적인 유용화 작업이 추진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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