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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플광24』


채문석 - 진정 알고리즘의 노예로 살고 싶은가?

플레이광주 3 563 02.07 15:29


# 2024년 대한민국

123일 밤. 97세 어머니를 간병 중이었다. 스마트폰 알람이 울렸다. 뉴스 속보였다. 비상계엄이 선포됐다는 내용이었다. 뜬금없는 계엄? 오보가 아닌가 의심했다. 곧바로 YTN 24번 채널을 틀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담화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이거 미친 것 아냐?" "2024년 대한민국에서 계엄이 가능해?" 화면이 이어졌다. 헬기에서 내린 공수부대가 국회의사당으로 진입했다. 두렵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긴장과 공포 속에 TV를 지켜봤다. 계엄인데 언론사 생중계가 가능하단 말인가? 결국, 비상계엄은 6시간 만에 끝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왜 '비상계엄' 카드를 꺼냈을까? 이후 담화를 종합하면 계엄의 이유로 '부정선거론'이 언급됐다. 보수 진영조차 황당해하는 부정선거 음모론이었다. 왜 윤 대통령은 여기에 심취했던 걸까? 누가 이를 부추겼을까? 정답은 유튜브에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최고 정보를 접하는 대통령이 레거시 미디어를 불신했다. 그는 유튜브의 극단적 주장에 빠져 있었다. 외신도 이를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14일 자 기사에서 "윤 대통령의 반란은 알고리즘 중독으로 촉발된 세계 최초의 반란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 2021년 미국

16. 미국 민주주의의 민낯이 드러났다. 의사당이 시위대로 아수라장이 됐다. 담벼락을 기어오르는 시위대, 의장 책상에 발을 올리고 웃고 있는 모습, 최루탄 연기 속에서 뒤엉킨 사람들, 믿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미 의회 폭동은 단순 시위가 아니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을 무효화하려는 폭력적 공격이었다.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시위대는 트럼프 지지자들이었다. 폭동의 근원에는 '선거 조작설'이 있었다. 음모론이었다. 문제는 허위 정보가 몇몇 극단주의자가 아닌, 유튜브와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을 통해 확산됐다는 점이었다. 트럼프 지지층은 선거 부정 관련 콘텐츠를 계속 추천받았다. 보고 싶은 것만 믿는 '필터 버블'에 갇혔다. 알고리즘은 정치적 팬덤을 강화했다. 음모론 지지자들은 자극적인 콘텐츠를 소비하며 결집했다. 반대 의견은 접할 기회조차 없었다. 결국, 거짓을 믿고 행동했다. 미국 민주주의는 역사상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 2017년 미얀마

미얀마는 불교 국가다. 인구의 90%가 불교도다. 북서쪽에는 소수 이슬람 민족 로힝야족이 거주한다. 2017, 미얀마 군부는 로힝야족을 학살했다. 7,000~25,000명의 비무장 민간인이 죽었다. 국제사회는 경악했다. 충격적인 점은 페이스북이 증오와 폭력을 증폭시켰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페이스북은 미얀마에서 주요 뉴스의 출처였다. 불교 극단주의자들이 증오 발언을 퍼뜨렸다. '위험한 존재'라는 거짓 정보가 넘쳐났다. 알고리즘은 폭력과 증오를 부추겼다. 군부는 이를 이용했다. 로힝야족을 테러리스트로 몰았다. 증오를 조장하는 선동 캠페인이 진행됐다. 결과는 대학살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아웅산 수치 여사였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그녀는 학살을 묵인했다. 국제사회가 비판했지만, 침묵하거나 정당화했다. 알고리즘이 만든 증오는 지도자마저 침묵하게 만들었다. 이 사건은 알고리즘이 단순한 정보 제공 도구가 아님을 증명했다. 잘못된 방향으로 작동하면 비극을 초래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신문이나 방송 뉴스만 보지 않는다. 유튜브, 페이스북, 엑스(X) 같은 소셜미디어가 정보 창구가 됐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53%가 유튜브에서 뉴스를 소비한다. 조사 대상 46개국 평균(30%)보다 높다. 알고리즘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정보만 보면 편향된 정보에 갇힌다. 편향은 막장으로 가기 쉽다. 인류 역사에는 집단 광기가 초래한 참극이 많았다. 지금도 그렇다. 확증 편향이 원인이다.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에서 집단 극단화를 경고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모이면 극단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의 폐해,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개인은 다양한 출처의 정보를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언론은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검증해야 한다. 플랫폼 기업은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를 공개해야 한다. 문제는 알고리즘 자체가 아니다. 인간의 편향과 결합될 때 발생하는 부작용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극단적 진영 논리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목숨 걸고 경쟁하는 결기', '모 아니면 도'의 사고방식이 현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알고리즘이 우리를 조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알고리즘이 전지전능하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조종당하는 노예'가 될 뿐이다. 노예가 되고 싶은가



Comments

쿠키맘 02.11 01:3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널리스트의 글은 항상 힘이 있어서 글을 읽는 맛이 납니다. 어쩌면 이 댓글때문에 제게 비슷한 논평들이 또 추천되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02.11 10:07
지금 시대에 딱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간결하고 깔끔한 글덕분에 단숨에 읽었습니다.
이종숙 02.24 20:06
글을 읽으면서 막연하게 알고 있던 알고리즘에 대해 좀 더 이해를 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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