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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광주 0 94 10.17 14:56


남도 밥집 '쌍학'



추억의 맛이 한 상 가득

 

머리에 별을 달고 나온 사장이 별이 다섯 개라는 말을 외치는 광고가 있다.

이 집 간판 역시 누가 봐도 학이 두 마리다. 학이라는 글자에 '히읃' 자 두 개를 새겨 넣어 쌍이라는 글자와 나란히 라임을 맞추었다.

쌍학. 40년 넘도록 장수하고 있는 일식당이다.

메뉴로는 보리굴비와 회 정식 몇 가지.

몇 가지 회와 생고기나 육회, 홍어 삼합이 나오고 부서 보리굴비, 멍게와 같은 해산물류, 해물 초무침, 새우튀김과 탕과 밑반찬 등이다.

이 많은 음식이 2만원이면 즐길 수 있는 란 정식이다. 여기에 일명 와다라고 부르는 해삼 내장을 듬뿍 넣은 낙지 탕탕이와 초밥 세트가 추가되면 25천 원 하는 런치 정식. 그 외에 저렴한 탕 종류와 살아 있는 크랩이 들어가는 고급 세트까지, 골고루 준비되어 있다.

분위기는 조용하고 깨끗하며 준비된 12개의 방은 단정하다.

회의 싱싱함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보리굴비의 고소함과 매운탕 국물의 감칠 맛, 그 날 잡은 고기가 아니면 못 내는 소고기 생고기, 뭐 이런 것만은 아니다. 맛 집으로 소문 난 곳이니 맛있기로는 당연한 일이다. 이 집만의 매력은 다른데 있다.

나물과 김치, 그리고 생새우를 넣은 무 조림 등 주연이 아닌 반찬이라고 부르는, 식탁의 조연들에 관한 이야기다. 눈여겨보지 않은 음식에까지 들인 정성과 맛이 느껴진다면 그 집은 분명 맛 집이다. 혀끝만 간질이는 그런 맛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런 의미에서 쌍학은 참 괜찮은 집이다.

무 조림에서 울컥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반쯤 삭은 파김치는 친정엄마 표이고 나물 역시 고소하다. 무 조림 비법을 물었다.

무를 푹 삶아요, 거기에 설탕을 조금 넣어요. 그래야 무의 쓴 맛 등이 사라져요. 간도 잘 배고....”

비법은 아주 간단했다. 그렇게 익힌 무에 고추를 간 다대기와 마늘, 술 그리고 생새우를 넣고 다시 졸여낸다.

최근에 개발했다는 와다 탕탕이는 잊지 못할 별미다.

만드는 방법은 아주 쉽다. 해삼 내장과 낙지 탕탕 썬 것을 섞어 깨와 참기름 한 방울 똑 떨어드리면 끝. 쌉쌀 고소 쫄깃한 맛이 일품이었다.

어디선가 감태 맛이 느껴지기도 하고 온갖 바다의 향이 입안에 맴돌았다.

오묘한 맛이었다. 첨 먹은 맛인데도 오랫동안 먹어 온 것처럼 느껴졌다.

한 눈에 반한 가끔씩 그리운 맛이 될 듯싶었다.

   

 

▲이미지


음식 인생 50

 

이런 음식을 만들어 내는 전 익수 사장은 어떤 분일까?

“24살 때 개업했어요. 그러니까 지금 개업한지가 한 40. 처음 시작할 때는 정통일식이 아니고 소박하게 소주코너 비슷하게

그러던 곳이 지금은 명실상부한 일본정식 맛 집이 되었다.

전 익수 사장 나이 14. 집이 가난하여 일찍부터 직업 전선에 나서야 했다.

어린 나이에 들어 갈 곳이라곤 자장면 집. 그렇게 그의 요식업 생활이 시작된다.

이후 정통 한식집인 국일관과 연수정이라는 요정을 거쳐 제대로 된 음식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 시절만 해도 야채 튀김이나 계란찜 등의 간단한 요리를 하는 데에도 몇 개월이 걸렸다. 사실 요즘에야 계란찜 같은 요리를 하기 위해 주방 시다부터 시작해야 한다면 비웃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당시엔 세상이 그랬다.

밥을 하기까지 물 긷는 일 3, 장작패기 3년이 그리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까

그 후 전 사장은 일식집으로 직장을 바꾼다. 반찬 만들기부터 칼을 잡기까지 총 10. 지금의 가게를 시작하기까지 꼬박 10년 동안 갈고 닦은 세월이었다.

덕분에 모든 음식에 능통한 박사가 되었다. 무엇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충장로의 고급 음식이 모두 그의 손 안에 있다. 그리고 그 것들은 다시 쌍학의 식탁에 오른다. 옛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이곳을 찾고 있다.

주로 50대부터 6070대 분들이 오셔요. 80대 분도 오시구요

남도 전통의 맛을 즐기고 싶은 관광객들 역시 주 고객이다.

SNS 마케팅 하나 하지 않아도 입소문만으로도 찾는 곳이다.

그라고 젊은이들의 입맛을 맞춰 그들의 핫플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왜 없을까?

지금 아들이 여기 들어와 있어요. 뭐 더 잘 되면 좋죠. 그래도 이 맛을 보러 오시는 분들이 있는 한 음식 못 바꿔요. 안 그럼 그 분들은 어디로 가요?”

음식만은 변화를 주지 않겠다는 게 그의 경영 철학!

퓨전이 넘실대는 시대다. 청춘들은 단짠에 길들었다. 건강한 우리 입맛을 잃어가는 중이다. 이 와중에 그의 경영 마인드가 무척이나 고맙다.

 

초심으로 40년 살기

 

초심을 ‘40년 지켜 내기란얼마나 힘든 일인지, 우리 모두 잘 알 것이다.

70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전 익수 사장은 매일 새벽시장에 나간다.

예전에야 꼭 해야 하는 일이었겠지만 지금은 아들과 동생이 함께 하고 있으니 슬쩍 미뤄도 되는 일이다.

매일 6시면 나가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이런 일 하면서 현장감을 잃음 안돼요.”

시장 행은 그에게 곧 공부다. 요즘 어떤 생선이 나오는지 어떤 야채가 맛이 좋은지를 체크한다. 횟감은 산지에서 바로 직송한다. 완도 중매인에게 원하는 활어를 주문해 두었다가 원하는 물건이 들어오면 경매 끝나자마자 자동차 배달을 받는다. 제주도에도 그의 중매인이 있다. 제주도 방어는 비행기로 모셔온다.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직접 찾아온다. 선도가 좋아야 음식이 맛있기 때문이다.

가끔 옛 명성을 떠 올리고 갔다가 허탕치고 올 때가 있다. 주인이 바뀌었단다. 간판만 남고 맛과 서비스는 사라져 있었다. 그러나 참 다행인 것은 전 사장의 아들이 주방으로 들어 왔다. 아버지의 음식을 열심히 배우고 있다. 우리도 몇 대째 맛 집, 이런 것을 누릴 때가 되었다.

제대로 만든 음식을 먹는 행운, 계속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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