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이 심각 단계로 모두가 의무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던 2020년 7월 어느 날, 당시 광주광역시 동구청의 김병규 부구청장님으로부터 점심을 같이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 자리에는 김 부구청장 외 동구청 공무원 몇 분이 함께 한 자리였다.
식사를 마치고 김 부구청장은 전일빌딩이 리모델링을 통해 재개관됐는데 "거기에 무엇을 했으면 좋겠냐"고 내게 물어오셨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던 이야기를 해 드렸다. 전일빌딩은 광주 최초의 복합 문화공간으로 특히 전일방송의 위상이 대단해서 당시 광주시민의 절반 이상이 전일방송을 들었었다고 운을 떼었다. 그리고 ‘팝송다이얼’이나 ‘밤을 잊은 그대에게’는 내 애청 프로그램이었다고 말씀 드리고 이어서 전일방송 대학가요제에서 나온 ‘모모’나 ‘빙빙빙’, ‘울보야’를 전국적으로 히트시킨 메신저 역할을 했던 전일방송을 부활시키고 광주 대중음악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내 얘기를 다 들은 김 부구청장은 ‘바로 그것’이라며, 전일빌딩의 한 공간을 동구청에서 위탁받아 운영하게 됐는데 그곳 운영을 맡아달라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전일빌딩 4층 전일생활문화센터에 들어가 일하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어쩌다 공무원’이 된 것이다.
당시 나는 광주 다운타운과 방송가에서 40년을 DJ로 일해 왔고 2010년 서울에 올라가 유명 DJ 박원웅 선배를 종용해서 우리나라 최초의 DJ 최동욱 선배와 이종환 선배를 회장과 부회장으로 모시고 한국방송DJ협회를 만들어서 기획이사직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21세기 DJ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 고민하고 문화관광부에서 지역문화예술인을 문화기획자로 양성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전문 문화기획자 교육도 받고 해외연수 등을 통해 ‘문화리더’라는 칭호도 받았다.
당시 문화리더 프로젝트에서 나는 ‘광주 대중음악의 역사’를 과제로, 자료를 찾아서 연구하고 작은 전시회도 열어서 주위의 관심을 받고 있었고, 광주대중음악 연구를 더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던 때였다. 그런 차에 갑자기 전일빌딩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내가 생각했던 것을 펼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된 것이었다.
우선 전일방송을 부활시키는 작업을 했다. 정부로부터 주파수를 배정받아 공중파 라디오로 운영하던 전일방송은 생각할 수도 없는 시절이 되었으니 시류에 맞게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서 운영하기로 하고 채널이름은 우여곡절 끝에 ‘245생활문화방송’으로 정했다. 2020년 10월 13일 임택 동구청장님과 광주 최고의 DJ 소수옥 선배님, 광주1세대 통기타 가수 국소남 선배님을 모시고 ‘245생활문화방송’ 개국방송을 했다. 그리고 2021년부터 245생활문화방송은 매주 화요일 오후 2시 ‘오로지 광주쇼’, 매주 목요일 오후 2시 ‘광주노래 이야기’를 생방송으로 송출했다. 2022년부터는 두 프로그램을 통합해서 ‘오로지 광주쇼’를 운영했는데 2024년 12월까지 ‘광주퀴즈’, 이슈있슈‘, ’빛고을 초대석‘, ’광주노래 이야기‘ 등의 내용으로 200여 회를 제작하고 진행했다.
전일방송은 대학가요제를 통해서 광주 젊은이들의 노래를 전국적으로 히트시키는 역할을 했다. 1978년 4월에 열린 제1회 전일방송 대학가요제에는 광주,전남 북 23개 대학에서 42개 팀이 참가했고 예선을 거쳐 21개 팀이 본선에 올랐다. 그 중 ‘모모’라는 창작곡으로 참가한 조선대 병설공업전문학교 대학생 김만준이 최우수상을 받았다. ‘모모’는 전일방송의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서 매일 방송 되었고 그것이 다른 방송국에서도 많이 신청되면서 전국적으로 사랑받는 노래가 되었다. 1979년 제2회 전일방송 대학가요제에서는 김종률의 ‘소나기’가 대상을 받았고 은상을 받은 동신전문대 듀오 드로운스의 ‘울보야’가 전국적으로 히트되었다. 1980년 제 3회 전일방송 대학가요제에서는 대상을 받은 하성관의 ‘빙빙빙’이 전국적으로 히트되었다. 전일방송은 광주에서 지역 대학생들의 노래를 생산하고 유통해서 소비할 수 있게 하는 문화산업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VOC 전일방송 대학가요제는 제3회 대회를 끝으로 1980년 11월 30일, 마지막 방송을 하고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조치에 의해 KBS 제2라디오로 통폐합이 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아픈 1980년에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이 또 다르게 문화적으로도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전일방송 대학가요제에서 나온 노래들은 아직도 꾸준하게 사랑을 받고 있고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우리 광주의 소중한 문화자산이다.
그래서 나는 전일방송 대학가요제를 부활한 ‘광주노래경연대회’를 2021년부터 운영했다. 창작곡 경연대회였던 이 대회를 통해 1회 대회 때는 장윤환의 ‘그때 그날을’이, ‘245가요제’로 운영되었던 2회 대회 때는 여성밴드 ‘아모르파티’의 ‘네가 기다렸던 곳’이 대상을 받았고, 3회 대회는 전일대학가요제 45주년을 맞아 ‘전일대학가요제의 추억’이라는 주제의 공연으로 전일 대학가요제에 참가한 주역들을 모시고 당시 입상 곡들을 부르는 공연으로 성대히 치렀다.
1972년 광주문화방송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하는 DJ 소수 옥이 광주 통기타 가수 1세대 이장 순과 국소남을 고정 출연시키면서 시작된 광주 포크 음악이 2022년에 50주년을 맞았다. 2021년 11월에 나는 광주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렉쳐콘서트 ‘이장순, 포크로 광주를 노래하다’를 맡아 강연했다. 그 자리에는 당시 황풍년 광주문화재단 대표가 와 있었고, 나는 ‘이장순으로 시작된 광주 포크 음악이 내년에 50주년이 되니 문화재단에서 관심을 가지고 기념공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하고 말씀드렸다. 그다음 해 초에 문화재단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광주 포크 음악 50주년 기념사업으로 5천만 원을 배정했다고. 그 중이 일부는 광주 통기타 1세대인 국소남 선배가 전남일보에 기고한 글을 엮어 광주 포크 50주년을 기록해 놓은 책 ‘통기타는 살아있다’를 출간하고, 김원중, 하성관 등 광주의 대표 통기타 가수들과 함께 11월 17일, 5.18기념문화센터 민주홀에서 50주년 기념공연을 기획하고 사회를 맡아 성대하게 치러냈다. 그 공연 말미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김만준이 ‘모모’를 불러 전국적으로 히트시켰을 때 나이가 23살, 하성관이 ‘빙빙빙’을 불렀을 때 가 24살, 김원중이 ‘바위섬’을 불렀을 때가 25살이었습니다. 지금 광주에는 옛 도청 앞 민주 광장에서, 첨단지구 쌍암공원 등 여기저기에서 버스킹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관심을 주시고 그들이 노래할 때 많은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실제로 지금 광주에는 젊은 뮤지션들이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포크 트리오 ‘바닥 프로젝트’를 위시해서 ‘광주의 밤’을 부른 ‘우물 안 개구리’, 세련된 음악을 하는 혼성 듀오 ‘윈디캣’, 재즈 뮤지션 ‘블루이어즈’, 박성언, 이승준, 김거봉, 조재희 등등...... 다양한 장르의 많은 뮤지션들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꿋꿋이 광주 음악을 지켜가고 음반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들 중 특이하게도 광주에서 프로그레시브 락음악을 하는 밴드 ‘제4집단’은 2024년에 LP음반을 발매하고 광주음악산업진흥센터 육성 뮤지션 중 광주대표로 선발되어 서울 공연을 하기도 했다. 나는 2021년에 ‘제4집단’의 공연을 처음 접하고 광주에 이런 밴드가 있구나 하면서 감탄을 했는데 이후 이들의 전일빌딩 옥상 전일마루에서의 공연을 주선하고 광주에서 열리는 그들의 공연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작년 ‘5월의 노래’ 무대와 광주버스킹월드컵 무대에서도 많은 호평을 받으면서 공연을 한 광주의 보물같은 팀이다.
광주에서 이렇게 많은 뮤지션들의 노래가 생산되고 있지만 그 옛날 전일방송이 했던 것처럼 유통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는 기관은 없다. 음악의 유통은 많은 방송이나 메신저를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좋은 노래가 만들어져도 듣지 않으면 묻히는 것이니까...... 젊은 뮤지션들이 만든 광주의 음악들이 빛을 볼 수 있도록 전일방송 같은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부활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광주 대중음악의 역사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광주대중음악 박물관이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