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이데올로기와 홍어
세계적인 음식 인문학자 마시모 몬타나리(Massimo Montanari)는 그의 저서 ‘유럽의 음식문화(1992)’에서 음식에도 서열이나 위계 또는 사상 등을 담은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내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귀족들은 흰 빵을 먹고 농노들은 검은 빵을 먹는다든지, 귀족들은 하늘을 나는 새고기를 먹고 하층 민중들은 땅을 기어다니는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것을 비롯하여 포도주는 신의 선물이며 맥주는 북쪽의 저주받은 불신자들의 저급한 술로 규정하는 등 계급과 지역과 민족 사이에서 음식에 특정한 사회성을 띠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말이다.
전라도 사람들에게 홍어는 소울푸드다. 단순히 선호하는 먹을거리라는 차원을 넘어 정서적 친밀감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전라도의 이러한 홍어 사랑은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표를 나누고 진영을 압박하는 지역 분열적 이데올로기의 대상으로 악용되었고, 지금도 전라도 홍어와 경상도 과메기는 좌우 정치인들과 그에 휩쓸리는 극소수 인사들이 상대를 비하하는 저급한 이데올로기의 소재로 악용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홍어는 조선시대에 왕이 신하에게 내릴 만큼 귀한 찬품으로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보아 최상위 음식이었다. 1796년 병진년 초봄에 정조 임금이 아끼던 신하 채제공(蔡濟恭, 영·정조 대 문신)의 생일을 축하하며 큰 홍어 한 마리를 하사한다는 기록이 이의 방증이다. 얄팍한 정치인과 극단적 지역주의자들이 뭐라 떠들던 홍어는 예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던 귀하디귀한 식재료였다는 말이다.
< 정조가 채제공에게 홍어를 하사한 사찬 문서 >
몇 해 전 홍도에서 만난 박춘익 할아버지(애석하게도 작년에 고인이 되셨다)는 아흔을 넘긴 고령임에도 총총한 기억력으로 홍어잡이와 홍어 장사에 관한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천으로 만든 돛 세 개 달린 무동력 목선에 홍도 해역에서 잡은 홍어를 싣고 영산포까지 오가는 홍어 장사는 바람의 방향과 물길에 익숙하고, 글쓰기와 셈하기 정도는 할 줄 아는 이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제대로 된 밭 한 뙈기 없는 섬사람들에게는 큰돈을 만질 거의 유일한 길이었지만 돈을 버는 만큼 위험도 따랐다. 어쩌다 바람과 물 때가 잘 맞는 날은 목포까지 하루 만에 도달하고, 이어 영산강 밀물과 바람을 타면 영산포까지 한나절 만에 닿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닷새 내외를 항해해서야 영산포에 도착할 수 있는 먼 길 이었다. 그래서 통상 왕복 열흘이 넘게 걸리는 이 뱃길에 나설 때는 항상 한 달 치 식량을 준비해야 했다. 바람과 해류를 잘못 만나 닷새를 훌쩍 넘기는 것은 예사이고, 『표해시말』의 주인공 문순득의 경우처럼 풍랑을 만나서 난파당하기도 하는 험난한 뱃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홍도, 흑산도 사람들은 끈질기게 홍어를 싣고 육지로 향했고 영산포 사람들은 생것이든 삭은 것이든 남들은 흉내 내기도 힘든 독특한 요리로 만들어 먹었다.
지금은 전라도 홍어의 상징이 된 톡 쏘는 삭힌 홍어는 영산포로 오는 뱃길 중의 배 안에서 삭혀진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익숙한 이야기는 박 할아버지의 증언에 의하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홍어잡이가 하루 만에 만선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아 대부분은 며칠씩 잡은 홍어들을 모으고 그래도 부족한 양은 다른 배가 잡은 홍어까지 사들여 배를 가득 채운 다음 육지를 향하므로 출항 직전 잡은 홍어가 아니라면 이미 출발 전에 삭았거나 삭힘이 시작되는 상태로 영산포행 뱃길에 오르기 때문이다.
험한 뱃길을 헤치고 영산포에 도착한 홍어는 영산포 제일의 홍어 도매상이었던 구 사장이라는 이에게 한꺼번에 넘겨졌다. 당대 이미 삭힌 홍어 요리가 익숙해진 때여서 삭은 홍어나 생 홍어를 구분하지 않고 같은 가격을 쳐주었고, 어부들은 받은 돈으로 쌀과 여러 가지 생필품을 구해 다시 홍도와 흑산도로 닷새 뱃길을 되돌아갔다.
돛단배를 이용한 할아버지의 홍어 장사는 한국전쟁 후 동력선이 들어오면서 중단되었고 하구의 강둑으로 인해 그 물길마저 막혔다. 그래도 영산포와 전라도 사람들은 홍어를 포기할 수는 없었고, 거기에 얽힌 수많은 사연과 땀들이 쌓여 전라도 사람들의 입맛과 정서에 맞게 체화되어 온 것이다.
< 흑산도의 홍어 말리기 >
개인적으로 즐겨 찾는 홍어집이 몇 있다. 목포 ‘덕인집’은 홍어 해체 쇼에 부위별 홍어를 맛볼 수 있고, 본고장 영산포 ‘홍어1번지’는 처음으로 전국 유통을 시작한 창업 사장님과의 인연이 있다. 서울은 홍어 삼합과 수준 있는 남도 음식이 있는 ‘남도랑’이 추천할 만하고, 사당역 인근에 다양한 홍어 메뉴로 MZ세대를 겨냥한 청년 셰프의 홍어 전문점이 있는데 흑산도 홍어라는 상호와 달리 대청도 해역에서 잡힌 홍어를 쓴다 하여 아쉽다. 광주에서는 예전에 흑산도 홍어만을 쓰던 괜찮은 홍어집이 사라진 후 아직 완전한 만족을 주는 집을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