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모 방송국에서 한 가지 실험을 했다. 하얀 쌀밥 두 개를 방송국 다섯 곳에 두고, 한 달 동안 직원들에게 한쪽에는 “고맙다, 사랑스럽다, 예쁘다”라는 좋은 말을 하게 하고, 다른 쪽에는 “나쁘다, 보기 싫다, 짜증 나” 등 부정적인 말을 하게 했다. 시간이 지나자 놀라운 현상이 벌어졌다. 좋은 말을 한쪽에는 하얀 곰팡이가 피어나면서 구수한 누룩 냄새가 났고, 부정적인 말을 한쪽에는 검정색의 곰팡이가 피어나면서 썩어버렸다.
과학적으로 믿을 수 없는 결과가 나오자, 제작진은 몇 차례 실험을 반복했다. 매번 결과는 똑같았다. 정말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다들 처음에는 무생물인 밥한테 좋은 말, 부정적인 말을 한다고 해서 무슨 차이가 생길까 반신반의했지만 믿을 수 없는 결과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처럼 긍정적인 말에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무생물인 밥에 좋은 말과 나쁜 말을 했을 때도 이처럼 차이가 확연한데 만약 사람이라면 어떠할까?
또 어느 방송국에서 방청객들을 상대로 실험을 했다. 토크쇼를 하는 것처럼 방청객들을 속이고, 스탭이 방청객한테 좋은 소문과 나쁜 소문을 전달했을 때 반응을 보는 실험이었다. 녹화 중간에 스탭이 방청객 한 명한테 미담을 얘기해 줬다. 그랬더니 몇 명한테만 전달되고, 더 이상 전달되지 않았다. 잠시 후에 유명인의 스캔들에 관한 소문을 전달했다. 그랬더니 순식간에 녹화장 안에 있는 방청객들에게 전달이 됐다. 반복해서 실험을 해도 결과는 비슷했다. 좋은 이야기는 잘 퍼지지 않지만 나쁜 이야기는 순식간에 퍼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실험이었다.
15년 전, 오랫동안 준비하고 도전했던 일이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뜻대로 되지 않아 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친구는 만나자마자 “친구, 고생했네. 고생했어”라는 말을 하면서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다. 앞서 여러 친구들이 위로한다고 건넨 말은 대개 조언이나 충고여서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이 친구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진심을 담아 내게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를 건넸다. 이에 깊은 위로를 받았다.
그 후로 어려움을 겪는 친구가 있으면 전화를 해서 “친구 보고 싶네.”라고 하거나 전화를 받지 않으면 “친구 보고 싶네. 꼭 전화 또는 문자 한 번 주시게”라고 한다. 그러면 한참 시간이 지나 연락이 온다. 만나면 “고생했네 친구. 고생했어”라는 말 외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친구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그 친구의 말을 귀담아들어 준다.
중학교 1학년 때 수학을 담당했던 선생님은 말끝마다 학생들에게 “이런 거지 같은 새끼들”을 연발했다. 습관적이었다. 어린 마음에 모두가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 선생님의 별명은 결국 ‘왕거지’가 되었고, 다들 수학 시간을 무척이나 싫어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과목도 수학이 돼버렸다. 학교 성적 떨어졌다고,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자녀에게 ”나가서 죽어버려“ 라고 말했다가 실제로 자녀가 부모 앞에서 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열고 뛰어내려 세상을 등진 예도 있다.
때로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실의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도 있고,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아 수십 년 된 관계가 멀어질 수도 있다. 칼에 베인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낫지만, 말로 베인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오히려 또렷해지는 경우도 있다. 항상 좋은 말만 하고 살아갈 수는 없지만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처럼 오늘부터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 지인들에게 따뜻한 말, 긍정적인 말, 위로의 말을 건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