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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숙 - 부모는 왜 아이를 묻어야 했을까?

플레이광주 2 152 04.07 09:19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수많은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다양한 가족들의 모습과 정서가 보인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아들, , 손자 등의 인물이 등장하고, 이야기에 따라서 가족들의 갈등과 화해, 기쁨과 슬픔, 분노와 역경 등이 다양하게 전해오고 있다. 내용은 각양각색이지만, 이야기 속의 가족 스토리는 우리 전통사회의 문화 환경을 이해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가족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고,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손순매아(孫順埋兒) 이야기를 꼽는다. 고려시대 때 일연이 기록한 삼국유사에 실려있는데, 우선 줄거리를 보자.


< 삼국유사 권5, 효선9 손수매아 흥덕왕대  사진:네이버지식백과 >

손순부모가 노모를 분양하기 위해 어린아이를 파묻으려다가 돌종을 발견한 내용이 적혀 있다

 

손순은 흥덕왕 때 모량리 사람으로 아버지는 학산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내와 함께 남의 집에서 품팔이하여 쌀을 얻어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손순에게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매번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자, 손순이 아이를 묻기로 했다. 모량리 서북쪽에 있는 취산에 가서 구덩이를 파다가 돌종을 발견했다. 돌종을 숲의 나무 위에 걸어놓고 쳤더니 은은하니 사랑스러웠다. 이 돌종을 얻은 것을 아이의 복으로 알고 돌아왔다. 돌종을 들보에 매달아 두드리니 소리가 궁궐까지 들렸다. 흥덕왕이 종소리를 듣고 자세한 내력을 알게 되었다. 왕이 말하길 곽거의 일화와 같다며 집 한 채를 주고 해마다 벼 50석을 주었다. 손순은 옛집을 홍효사(弘孝寺)’라고 하고 돌종을 안치했다. 진성왕 때에 백제의 횡포한 도적이 마을에 들어와 종은 없어지고 절만 남았다.

 

통일신라시대 흥덕왕 때에 벌어진 이 이야기는 자식을 죽여서라도 어머니에게 효를 다한다는 것으로, ‘희생효의 정점이며 대명사이기도 하다. 손순이 자식을 묻으려고 했지만, 자식을 희생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궁극 자식을 희생시켜라도 부모에게 효를 다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가족 윤리가 반영된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통일신라시대 당시의 가족 윤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에 발간된 수많은 문헌에 수록되어 전하고 있다. 수록된 문헌에는 모두 자식을 희생하더라도 효를 실천하려는 자식의 도리, 자식을 죽여서라도 노모를 봉양하려는 의지 등에 대한 내용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손순매아에 버금가는 또 다른 이야기로  동자삼이야기를 들 수 있다. 며느리가 아이를 삶아 먹이면 부모의 병이 낫는다는 말을 듣고 서당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삶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것은 아이가 아니라 산삼이었다는 익히 알려진 이야기이다. 이 역시 자식을 죽여서라도 부모에 효를 다하려는 의지와 함께 이에 감동하여 하늘이 돕는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귀결된다.


어쨌든, 이 이야기에서 조부모, 부모, 자식 등의 3대로 구성된 가족에게 효는 가장 근본적인 가치이면서 절대적 가치로 기능하고 있고, 효에 대한 가치 실현을 최고의 선으로 인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말이다그러나 이러한 이야기가 단순히 효만을 강조하고 있지는 않다. 어찌 노모를 모시기 위해 자식을 죽이는 일이 실제 가당키나 한 일이겠는가?

  

 손순매아 이야기 가운데 아버지 손순은 아이를 묻기 전에, “아이는 얻을 수 있으나 어머니는 다시 구하기 어려운데, 음식을 빼앗아 먹으니 어머니께서 굶주림이 어찌나 심하겠소! 아이를 묻고, 어머니의 배를 채웁시다.”라는 말로 부인을 설득한다. 손순은 어머니와 자식을 두고 결국 어머니의 봉양을 선택한 것이다. 자식을 죽임으로써 어머니를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한 일로 판단했기에 부인을 설득하는 모습이 눈물겹다.

 

그리하여 손순이 아이를 묻기 위해 땅을 팠더니 돌종이 나오자, 부인이 나서서 특이한 물건을 얻은 것은 아마 아이의 복이니 (아이를) 묻지 맙시다.”라고 말한다. 너무나 가난한 현실에서 자식을 땅에 묻을 수밖에 없었기에, 이를 순응한 부인이 돌종을 발견하자 오히려 남편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게 된다. 돌종이 나온 것은 아이가 복이 있어서 하늘이 돕는 것이라고 말이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를 선택하는 손순과 돌종의 발견으로 아이를 살리기 위해 남편을 설득하는 부인의 결정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모든 가족이 함께 행복하게 살게 된다. 이러한 결말이 이 이야기의 묘미이고 진실된 의미일 것이다. 이는 단순히 효를 강조한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아이를 묻으려고 한 결과가 돌종이고, 돌종을 아이의 복이라 하여 아이를 묻지 않고 돌종을 가지고 와서 두드린 결과가 왕으로부터의 포상이다. 이야기가 사슬처럼 연결되어 결과적으로 가족들이 모두 행복하게 살게 되는, 결국 아름다운 조화로움을 추구한다. 이 조화로움은 가족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당시 사회의 큰 울림으로 기능하였던 것이다.

 

이야기는 사실에 근거를 두긴 하되, 어느 정도 상상력에 의한 창작이다. 그러나 상상력은 독자적인 산물이 아닌 여러 문화 요소가 버무려지면서 민중들의 희망, , 기원 등을 함축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손순매아 이야기가 통일신라시대에 실제 있었던 일인지는 단언할 수 없으나 그 당시의 대표적인 이야기로 꼽혔기에 일연이 삼국유사에 기록했을 것이다. 정말 자식을 죽여서 효를 다하자는 것은 분명 아니다. 효라는 유교 윤리를 기반한 이상적인 가족공동체를 추구하였던 것으로 풀이해볼만하다.


오늘날 변화하는 현대사회에 갈수록 자식 독점 가족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한 번쯤은 환기해볼만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Comments

04.07 10:30
요즘 세상엔 반대로 가는거 아닌가 싶어서 슬픕니다. ㅠ ㅠ
오주섭 04.08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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