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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이상헌 - 36년 교직인생을 마치는 자리, 나의 교육운동사 말 걸기

플레이광주 6 616 04.01 09:24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볍지 않다. 하지만 피할 수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다만 성심성의껏 나누며 함께 나눌 길을 찾을 일이다. 감사하게도, 인생의 처음에는 유독 자신에게만 특수하고 고유했던 사건이고 경험이라 생각했으나, 세상살이는 그 모든 사건과 경험들이 다양한 모습일 뿐 결국은 함께 겪고 있는 것임을 우리들에게 일깨워 준다.

누구나 고유하지만, 그 모든 것이 보편의 얼굴을 갖고 있으며, 서로 바라보고 서로 소통하는 길들이 열려 있다는 깨달음은 참으로 달콤하고 소중하다.

 

나는 2025228일 자로 36년의 교직인생을 정리했다. 1989년 대학졸업과 동시에 사립고교 교사를 시작, 단지 한 학기 교직생활을 끝으로 해직된 후 48개월의 해직시절을 보내고 1994년 공립학교 교사로 다시 교직생활을 시작하여 31년을 달려왔다.

 

교직 첫해, 전교조 가입과 탈퇴거부를 이유로 그 어떤 법률적 근거도 없이 교단에서 추방된 것이나 교단으로 돌아오기까지 48개월 동안 나는 우리 사회의 변혁과 교육개혁, 참교육의 꿈을 오롯이 나의 가슴 속에 품을 수 있었고, 너무도 행복한 고백이지만 경제적 곤란과 불안한 진로에도 불구하고 꿈과 신념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평생 동지들의 텃밭에서 맷집을 키워갈 수 있었다.

 

1994년 이후 2025년까지 공립 중등교육의 도덕·윤리 교사로 살았지만 처음 시작을 해직으로 보냈기에 나의 교직생활은 나의 첫 시작 첫 마음을 배신하지 않고 책임질 것에 대한 물음표가 주홍글씨처럼 가슴 깊이 각인된 교직 인생이었다.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는 거센 파도의 높이는 조금씩 달랐지만, 변혁의 시대, 격랑의 세월이었다. 해직과 더불어 구속의 경험까지 누렸지만(?) 침묵의 시대에 난파선에서 홀로 외롭게 싸웠던 그 어느 분들과 달리 나는 함께 노를 젓고 파도를 헤쳐 가는 시절이었기에 누군가에겐 공상적으로 들렸을 메시지를 삶의 등대로 삼고 끊임없이 한 걸음 더 진보할 것을 채근하며 멈추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30여 년이었다.

 

세상과 삶의 진보를 향한 몸부림은 그 성취만큼 실패와 정체 또한 희미하지 않고 명확하다. 진보를 말하면서 성취만을 언급한다면 과연 얼마나 진실한 이야기일 수 있을까? 달려갈 길을 잘 달려왔다고 말하면서 이루지 못하고 실패한 것들, 후배들에게 고백하고 부탁할 이야기가 없다면 그 어찌 변화의 울림일 수 있을까?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렇고, 진보운동이 그러하며, 교육개혁이나 전교조 역시 성취만큼이나 실패와 미완의 과제가 명확하지 않다면 어쩌면 그것은 의심해볼 일이다. 혹여나 처음 그 마음이 아니고 말을 바꿔 탄 다른 이가 처음 사람처럼 연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여나 처음 그 마음이 변심하여 젯밥에만 관심 갖는 도둑으로 바뀐 것은 아닌지 말이다.

 

격랑의 세월과 싸워 온 오랜 시간이기에 실패와 미완의 과제, 그 상처는 결코 외부에만 있지 않고 우리 자신 내면에 있다. 이루지 못한 권력을 말하기에 앞서 자신의 내면의 상처를 말하고 여전히 자신이 앞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 새롭고 싱싱한 후배들이 앞서 나아가며 지금의 상처를 싸매며 어떻게 함께 나아갈지 돌아보는 성찰과 소통은 가끔이 아닌 일상의 작업이어야 한다. 섭식만큼 배설이 중요한 몸의 이치처럼 지속 가능한 운동과 진보는 성취의 미사여구만큼 실패와 상처를 돌아보는 아픈 진단에 게으를 수 없는 일이다.


 


지난 226일 광주시교육청 앞에서 450여 일 넘게 함께 싸웠던 동지들과 지인들이 나의 퇴직기념식을 챙겨 주셨다. 다른 이들의 퇴직행사 제안은 물리쳤지만 어려운 싸움을 함께 한 이들의 속마음을 생각해서도 나는 그 자리를 감당해야 했고 앞에 나서서 발언해야 했다.

그분들과 450여 일의 싸움을 돌아보고 격려 위로할 일이나 나는 나의 교직생활의 엄숙한 과제와 실패를 고백하는 기회로 삼겠노라고 요청하고 40여 분간 단편 단편 비치었을 나의 교직인생, 교사운동을 한데 모아 고백하였다.

 

학생자치를 꿈꾸었던 참교육운동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교과교사가 아닌 인간의 성장을 꿈꾸는 교육적 전문성을 향해 펼쳤던 담론은 어디엔가 실개천이 되었지만, 여전히 200미터 지하의 암반수 같기만 하다. 학생인권과 성평등을 향한 외침들은 몇 가지 조례로 교육환경의 인테리어가 되었을 뿐 교육의 속살이 되지 못하고 있다.

 

5.18교육은 행사 중심의 치적물로 전락하고 역사의식을 배출하는 학교는 여전히 멀기만 하다. 나는 광주의 교사운동에서 재야로 살았다. 정파라고 왜곡하며 사실은 민주주의를 상실한 노동운동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학교현장, 노동운동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능한 교육감이 될 수 없다. 교육정책의 대안과 이정표를 갖지 않는 교육시민운동은 비판도 어렵고 교육자치를 견인할 수도 없다.

 

그날의 고백들을 떠올리며 간추려본다. 퇴직기념식에서 그 무슨 성취보다 미완의 과제들, 상처들에 대한 고백이 급했던 것은 나 자신이 비록 교직은 멈출지언정 나의 교육운동이 멈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퇴직 이후에 또 다른 위치에서 더욱 차분하게 민주주의를, 운동을 나누고 싶음이다.

 

36년은 짧기도 혹은 길기도 하다. 다만 내가 소유하는 인생이 아닌 우리의 성취와 실패에 대한 명료한 의식이 함께 할 때 시대의 발걸음이 되리라 믿는다.



 

Comments

04.01 11:09
광주교육사의 바른 역사의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건강하시길
배이상헌 04.16 10:42
한없는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김미아 04.13 09:40
선생님 건강하세요. 긴 시간 외로웠지만 누구보다 강인하셨던 선생님을 항상 존경합니다.
배이상헌 04.16 10:44
ㅎ 감사드려요. 강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닌 듯요. 그저 외로움을 인정하고 드러내면 되는 것 같아요. ㅎ
손미라 04.18 08:52
가슴 속 선생님들은 싹다 지워버리고 선생님 딱 한사람 남았습니다. 1989년 첫모습 그대로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배이상헌선생님 인생은
확그냥 막그냥 행복하고 빛나리~~
박형민 04.18 12:12
내가 소유하는 인생이 아닌 우리의 성취와 실패에 대한 명료한 의식이 함께 할 때 시대의 발걸음이 되리라는 선생님의 말씀 깊이 새기겠습니다. 지난 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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