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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광 - [무등산을 노래한 우리 가요] - 멋쟁이 아가씨가 넘나들던 신식 호텔

플레이광주 1 169 03.28 09:20

 

광주광역시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무등산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내 학창 시절의 기억에 소풍을 가면 무등산 중머리재나 동적골 아니면 제4수원지 청풍쉼터로 갔고, 도롱뇽알을 채취하거나 칡 캐러 갔던 곳도 무등산 줄기의 어느 골짜기였다. 그렇게 친근한 무등산을 국립공원으로 승격해달라고 2010년에 광주광역시에서 환경부에 건의했을 때 과연 승인이 날까 하고 반신반의했었다. 그 후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승격됐다는 소식에 모두가 깜짝 놀랐고 우리가 무등산의 위상을 과소평가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에 포털 서비스 업체인 네이버에서 192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한국 대중가요 앨범 11,000장을 빅 데이터화해서 지식백과 콘텐츠로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한국 대중가요 앨범 11,000장에 수록된 수많은 곡의 가사를 분석해서 다양한 내용으로 분류했는데, 지리적인 분석 중에 노래 중 가장 많이 나온 산으로 무등산이 남산과 금강산, 유달산, 한라산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백두산, 지리산, 설악산 등의 명산을 제치고 무등산을 노래한 가요가 다섯 번째로 많다니 참 의아한 일이었다. 광주에 살면서도 무등산을 소재로 한 노래를 거의 들어보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그 무렵 광주노래를 찾아 듣고 연구하는 일을 계속하면서 노래 속에 나오는 무등산의 위상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했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100년 가요사에서 100곡이 넘는 광주노래를 찾았고 90여 곡의 음원을 확보했다. 그중에 무등산을 노래한 곡이 60곡이 넘었다. 그 노래들을 시대별, 내용별로 분석해보니 아주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이 나왔다.

 

그 노래들 중에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난영과 쌍벽을 이뤘던 여가수 황금심이 1961년에 부른 남도 신아리랑을 살펴보자


 

< 황금신-신 남도 아리랑 표지 >


황금심 - 남도 신 아리랑 (1961, 강남풍 작사, 김부해 작곡)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장단에 소를 모는 저 목동아

무등산 화전 밭은 어데 가고

멋쟁이 아가씨만 넘나드느냐

신식 호텔이 생겼다네

 

이 노래를 통해 60년대 초 무렵, 무등산에는 강원도에나 있을 법한 화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전은 삼림을 불태워 농지와 비료를 확보해서 농사짓는 원시농법인데, 1968화전정리법이 나온 이후에 법령으로 금지되어서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이 노래에 나오는 신식호텔이 어디일까 조사해 봤더니 무등산장호텔이었다. 호텔의 현주소는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로 1567이다. 이곳은 1959년 교통부가 건국 이후 처음으로 설악산, 불국사, 해운대, 대구와 함께 무등산에 명승지 관광호텔 건립 계획을 수립하고, 19594월 당시 김일환 교통부장관이 무등산을 직접 답사해서 원효계곡을 후보지로 결정하고 그해 7월에 산장식 관광호텔로 착공했다. 객실은 10개밖에 되지 않았지만 연회장, 식당 등 부대시설을 갖춘 우리 지역 최초의 관광호텔이었다.

 

 <  무등산 산장 >


이곳은 준공 후 교통부에서 광주시에 경영 위탁했는데, 1962년 국제관광공사가 발족하면서 관광공사로 운영권이 이양됐고, 19663월에는 전남일보사가 인수해서 1980년 전남일보가 전남매일신문과 통폐합되어 광주일보가 된 후 1999년까지 운영했다. 그 후로는 원래 지주인 원효사로 운영권이 양도되어서 개인임대로 대중음식점과 커피숍으로 바뀌었는데, 운영난으로 오래 비워져 있다가 2012428일 무등산권 문화회의에서 숲 문화학교로 쓰이는가 싶더니 2015년부터는 다시 비어 있다.

무등산장호텔은 당시에 광주의 명소로 각광을 받았던 것 같다. 1962년에 나온 김득수의 무등산 아가씨라는 노래에도 등장한다.

<  김득수-무등산 아가씨 표지  >

 

김득수 - 무등산 아가씨 (1962, 정득채 작사, 강준희 작곡)

무등산 수박밭에 수줍은 아가씨

차림새도 곱건만은 사랑은 없드라

달빛이 스며드는 무등산 산정에

들려오는 사랑노래 눈물이 진다

 

무등산 딸기밭에 수줍은 아가씨

거니는 말 부드러워도 사랑은 없드라

네온 빛 깜박이는 고요한 산장에

스쳐가는 사랑노래 눈물이 진다

 

당시 산장호텔은 최신식 호텔답게 화려한 네온 간판을 해서 달았던 모양이다. 또 다른 노래에서도 화려한 무등산장호텔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정광중 - 광주 부루스 (1966 정득채 작사, 김부해 작곡)

무등산 산장불이 깜빡이든 그 밤에

그대가 속삭이든 꿈같이 사라져간

행복 속에 흘러간 로맨스여

이 밤도 젊은이들 짝을 찾는 공원의 거리

~ ~ 광주 부루스여

 

황금심의 남도 신 아리랑김득수의 무등산 아가씨’, 정광중의 광주 부루스를 작사, 작곡한 사람이 겹치는 것으로 보아 당시 광주에 오는 음악인들이 무등산장호텔에서 많이 묵은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겠다. 1962년 한명숙의 노래 '노란 셔쓰의 사나이를 작곡한 손석우도 무등산장호텔에 묵으며 느낀 감정을 노래한 곡을 만들었는데 그 노래는 무등산의 달이고 해남 출신의 가수 오기택이 불렀다.

 

오기택 무등산의 달 (손석우 작사, 작곡 1965)

산장에 밤은 깊은데 여사에 앉은

나그네의 잠을 앗은 푸른 저 달빛

나뭇잎 산들산들 바람을 타고

정다운 애인들의 밀어만 같아

두고 온 저 거리에 아름다운 아가씨

가슴에 아련한 육자의 가락

산장에 밤은 깊은데 여사에 앉은

나그네의 잠을 앗은 무등산의 달

 

이렇게 노래의 소재로 많이 이용된 무등산장호텔은 당시 광주에서 활동했던 문화예술인이 자주 찾아 작품을 위한 영감을 얻어 갔다고 한다. 광주문단의 거장 다형 김현승 선생과 서양화가 오지호, 천경자 등이 이곳을 자주 이용했다. 그리고 60년대와 70년대에 젊은 부부들의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았는데 1966년에 광주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에 맞춰 금남로에 광주관광호텔이 지어진 이후로는 점차 쇠퇴해졌다. 1980년대에는 민주인사들의 비밀 회합 장소로 이용되었는데, 19895, 4수원지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이철규 열사도 무등산장에서의 만남을 위해 이동 중에 변을 당한 것이었다. 그래서 무등산장호텔은 광주 민주화 운동의 숨은 명소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에는 노후화되어서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지만, 덕분에 국내 5개 명승지에 건립한 관광호텔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축물로 관광 사적 의미가 크다 해서 202039일 국가등록문화재 제776호로 등록됐다. 그리고 관할 지자체인 광주광역시 북구에서 무등산장호텔의 지속적인 유지,관리를 위한 활용 방안을 찾기 위한 공모사업 공고를 내기도 했으나 뾰족한 방안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


광주 시민들의 곁에 가까이, 늘 그곳에 있어서 소홀히 했던 무등산과 무등산장호텔이 노래 속에서 이렇게 많이 그려져 있는 것을 듣고 보면서 이제부터라도 무등산의 가치와 위상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고 그 활용 방안에 대해서 깊은 성찰이 있어야 될 것 같다.



 

 

 

Comments

이여진 03.31 22:43
무등산이 설악산이나 지리산을 제치고 대중가요 가사에 그렇게 많이 나왔다니 놀랍네요..아마도 광주.전남인들이 음악에
많은 소질을 가지고 훌륭한 작곡가나 가수를 배출해서 그런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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