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중문화의 중요한 플랫폼 역할을 하는 60여명의 사람들이 미리 들었던 ‘짙은’ 은 과거 한국 모던록을 답습하지 않으면서도 왠지 모를 낯익음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이제는 가장 중요한 청자들의 몫이 남겨졌다. 차례대로 곡들이 플레이되면, 당신의 머리에는 지난 세월에 감추어진 몇 겹의 이야기들이 순서없이 떠오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열 한 번째의 마지막 곡이 끝이 나면, 기쁘되 크게 웃지 않고, 슬프되 흐느끼지 않는, 다르면서도 같은 의미로 공유되는 감정들의 질서있는 교차점에 서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을 들게 할 것이다. 나비를 닮은 섬으로의 여행, 달빛에 취한 나비를 떠올린 선율과 그녀가 없어진 빈 침대를 바라보는 ‘짙은’ 식 시선들. 11개의 곡들에 묻어나는 ‘짙은’이 건네는 대화는 잘 정돈되어있고, 따뜻하며, 절제되어 있고 음악을 듣는 지금 이 시간을 팽창시켜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어떤 위로의 말로도 감당치 못 할 때 음악을 듣게 되는 이유를 알겠는가.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대화법이 바로 음악이기 때문이다. ‘짙은’은 현재 군복무 중인 윤형로를 대신해, 당분간은 보컬 성용욱 혼자서 빈 자리를 혼자서 채워나갈 예정이다. 대중성의 부재라는 락 음악의 과제를 잘 풀어내며 동시에 아름다운 멜로디와 맛깔나는 사운드로 신인답지 않은 면모로 우리에게 따뜻한 빛깔로 인사를 건넬 ‘짙은’. ‘짙은’이 여는 한국 모던록의 뉴웨이브가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