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주제에 무게감 떨어진 ‘고백’
80년 당시 계엄군의 고뇌 실감 덜해

연극 '고백' 한 장면. 푸른연극마을 제공
연극 '고백' 한 장면. 푸른연극마을 제공

2019년 쌀쌀한 10월에 보았던 연극 <고백>이 다시 올려진다는 소식을 듣고 극단 ‘푸른연극마을’의 <씨어터연바람>을 찾았다. 2019년에서 세월이 흐른 만큼 어떻게 개작이 되었을지 궁금했다. 이번에는 과연 <고백>이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극으로 재탄생되었을지 기대도 되었다. 광주에서 공연하기 전에 서울 대학로에 있는 ‘후암씨어터’에서 5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공연했다고 하니 궁금증과 기대가 더 증폭되었다.

2022년의 <고백>은 2019년에 보았던 <고백>과 다르면서도 같았다. 일단 <고백>이라는 연극의 큰 줄기가 같았다. 1980년 5월에 공수부대의 일원으로 광주에 왔던 이정하라는 사내가 한 축을 담당하고, <만호 반점>이라는 중국식당의 주인 강만호와 그 주변 인물들이 한 축을 형성하는 점이 같았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라면 2019년의 <고백>에서는 두 장면 나오고 사라졌던 이정하의 딸을 중심축으로 연극이 엮어진다는 것이다.

당사자가 아닌, 어지러운 ‘시선’
 
이 시도 자체는 좋았다고 본다. <고백>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공수부대 출신 이정하(가해자)의 고통과 고뇌를 보여주면서 그가 참회하는 것을 중심으로 삼기보다 한 발짝 빗겨나가 80년 5월 당시의 당사자가 아닌 시선(이정하의 딸)을 가져간 것 말이다. 그렇지만 그 시선이 잘 활용된 연극이 한 편 탄생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당사자가 아닌 시선이 연극을 더 어지럽게 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연극 '고백' 한 장면. 푸른연극마을 제공
연극 '고백' 한 장면. 푸른연극마을 제공

첫 장면에서 이정하의 딸 영은(배우 오새희 분)이 현대무용 비슷한 것을 보여준다. 뭔가 싶으면서도 그냥 보았다. 저 격렬하고 고통에 찬 몸짓이 아무 의미가 없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때 또 다른 배우가 나와서 꽃씨를 심고 물을 주며 꽃이 피어나기를 바라는 행위를 한다. 하지만 천둥 번개가 꽃밭을 엉망으로 만들고 배우가 슬퍼하는 만큼 관객도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꽃은 희망과 사랑과 평화를 뜻하는 것 같은데 그것이 처참하게 뭉개졌으니 당연히 슬플 수밖에.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80년 5월에 사랑하는 딸과 이웃을 잃고 알코올중독에 치매기마저 보이는 늙은 사내 만호와 그 주변인들, 버스 안내양 민정, 구두닦이 영수, 철가방 봉식의 과거가, 즉 평화롭던 일상과 그 일상이 계엄군에 의해 짓밟히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 부분은 2019년의 극과 거의 같다. 과거 다음에는 이정하와 영은의 현재가 그려진다. 영은은 작품에 영감을 얻기 위해 광주에 답사를 가겠다고 하고 이정하는 딸을 말리지 못한다.

2022년의 <고백>은 2019년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정하가 무명열사의 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참배하는 것으로 끝난다. 다른 점은 이정하가 딸 영은의 손에 이끌려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80년 5월에 함께 광주로 투입되어 잔학한 살상을 저질렀던 동료(김하사에서 김목사가 된)가 그날에 대해 회고록을 쓴 것과 딸이 공연을 위해 광주를 다녀오는 것만 가지고는 정하의 고뇌가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 거기다가 무대 왼쪽에서 정하가 자신이 그때 진압군이었음을 고백하는 것을 무대 오른쪽에서 영은이 듣고 있는 상황도 전혀 개연성이 없이 진행되었다.

연극 '고백' 한 장면. 푸른연극마을 제공
연극 '고백' 한 장면. 푸른연극마을 제공

영은이 하려고 하는 공연이 연극인지, 무용인지도 알 수 없었고, 소재가 80년 5월인지도 분명하지 않았으며, 정하는 내내 묻고 살던 비밀을 왜 갑자기 독백으로 뇌까리는지, 영은은 그것을 어떤 경우로 듣게 되는지도 정확하게 나오지 않았다. 연극은 그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알잖아. 그때. 1980년 5월에 평화롭던 일상을 뺏기고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을 잃은 사람이 있었잖아. 그리고 그 가해자들도 고통스럽게 살았을 거잖아. 그런데 이제 참회하고 고백하고 있어.

애쓴 흔적 불구 더 깊은 토의·각색 필요

우는 관객도 많았다. 나도 마지막에 나오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마스크 안에서 조그맣게 따라 부르며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그것은 노래의 힘에 의한 것이었지 연극이 주는 감동 때문은 아니었다. 이번 2022년 <고백>은 많이 애쓴 흔적을 여실히 볼 수는 있었지만, <고백>이라는 제목에 더 근접하기 위해서는 좀 더 깊은 토의와 각색이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정하의 딸 영은의 역할이 너무 크고 비중 있었는데 마치 오새희라는 배우의 데뷔 무대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배우 오새희는 이 작품이 첫 작품은 아니다. 

80년 5월 광주를 아는 이들은 누군가의 참된 고해를 진심으로 바란다. 바로 가해자다. 발포 명령권을 가진 자가 누구였는지, 우리가 합리적으로 의심하는 그 사람이 정말 발포 명령권자였는지 우리는 진실을 알고 싶다. 아직 그 사실이 명시적으로 밝혀지지 않아서 연극 무대에서 표현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5·18을 가지고 <고백>이라는 제목을 달려면 가해자의 일원이었던 이의 고통스러운 세월과 고뇌와 진심 어린 고백을 표현해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극단에서도 다 하는 도식적인 내용과 형식 말고 <고백>이라는 제목이 걸맞은 좀 더 분명한 무대가 나왔으면 한다.
임유진(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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