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 무대읽기]뮤지컬 ‘광주’
“화려한 볼거리로 무장한 하나의 브랜드”

뮤지컬 광주.
뮤지컬 광주.

[임유진 무대읽기]뮤지컬 ‘광주’
5월 15일에서 16일, 광주 빛고을문화회관에서는 뮤지컬 ‘광주’ 공연이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뮤지컬이었다. 가장 좋은 좌석이 11만 원이나 할 정도로 상당히 비싼 공연이었음에도 사람이 많이 몰렸는데, 아이들 손을 잡고 온 사람도 많았다. 공연 시간은 1부가 75분, 인터미션 20분, 2부가 75분이었다.

뮤지컬 ‘광주’에 대한 소문은 많았다. 배우들의 사투리 구사가 어색하다는 것도 있었고, 광주 시민들이 보기에는 어설프다는 지적도 있었다. 광주 사람이 아닌 관객은 운다는 얘기도 있었다. 이런 것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몹시 객관적인 입장에서 관극하려고 노력했다. 광주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배제하고 극 자체로 평가하고 싶었다.

막대한 자본이 들어갔음을 느낄 수 있는 무대장치와 배우들의 열연은 훌륭했다. 또한 기존의 80년 5월 광주를 소재로 한 다른 극과 달리 ‘편의대’를 전면에 내세워 광주시민의 항쟁에 가치 있는 근거를 더한 점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길고 비싸고 화려한 볼거리로 무장한 하나의 브랜드, 80년 5월 광주를 소재로 한 브랜드 하나가 런칭되었다는 것이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노래를 부르기 위해 극을 진행하는 느낌”

‘광주’의 주요 인물은 편의대의 일원으로 파견된 박윤철(작전명 박한수)이다. 광주 사람들이 민주화를 위해 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시위를 할 때 민간인 복장으로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민심을 교란하는 것이 편의대 한수의 임무다. 한수는 광주 출신이고, 서울에서 살다가 광주에 투입되었는데 처음에는 맡겨진 임무에 충실하게 임한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광주 시민들에게 무기고를 탈취해서 총을 들고 항전해야 한다고 선동한다. 그런데 광주 시민들은 한수의 선동에 좀체 넘어가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한수는 야학의 학생이었던 용수가 진압군의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목격하게 되고, 광주 시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진심에 동화되면서 뭔가 이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한수는 자신이 ‘프락치’임을 밝히고 항쟁의 마지막 날 도청에 합류하지만, 광주 시민들은 한수에게 살라고, 살아서 산 증인이 돼달라고 부탁하며 그를 도청 밖으로 나가게 한다. 40여 년이 흐른 다음 한수는 죽은 자들에게 참배한다.
이런 기본 구성에 그동안 광주를 소재로 했던 극들이 해 왔던 이야기를 뮤지컬 ‘광주’는 되풀이한다. 순수한 마음으로 민주화를 열망하는 사람들, 그들을 짓밟는 독재 정권의 총칼, 독재 정권에 야합하는 언론, 어쩔 수 없이 무기를 들고 항거하지만, 정권을 믿고 투항하자는 온건파와 정권을 믿을 수 없다며 끝까지 투쟁하는 강경파의 대립, 그리고 무고한 시민들의 죽음과 피로 물든 민주주의.

80년 5월이 무겁고 어둡고 심각한 것에 대해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제 이 아픈 역사를 축제처럼 표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뮤지컬 ‘광주’는 그 표현의 방법이 조금 설익은 것이 아닌가 싶다. 봉쇄되어 섬처럼 고립된 도시에서 자체적으로 해방구를 이루었던 열흘 간을 그냥 보여주기만 해도 광주의 5월은 축제처럼 느껴질 것인데, 부러 그것을 춤과 노래로 가볍고 흥겹게 터치하면서 강조하는 것이 ‘광주’라는 하나의 사건을 도식화하는 느낌도 들었고, 무엇보다 넘버를 위한 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 광주_공연 사진.
뮤지컬 광주_공연 사진.

뮤지컬이란 극적인 요소와 춤과 노래가 결합한 극이다. 뮤지컬이 노래가 주가 되는 극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장면에서 어떤 넘버가 나올 때 그 노래가 충분히 녹아들어야 하는데 뮤지컬 ‘광주’는 마치 어떤 한 노래를 부르기 위해 극을 진행시키는 느낌이었다. 또한 두드러지는 인물 말고는 덩어리져 표현된 광주 시민들에게서는 일종의 ‘진정성’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거리의 천사’는 이 극에서의 역할이 무엇인지 애매한데 춤과 노래에 뛰어난 기량을 가진 배우가 나오니까 극에 대한 감상을 더 흩트렸다.

“진정한 브랜드 공연으로 거듭나길”

광주 시민의 항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윤이건(아마도 ‘들불 야학’의 윤상원 열사를 모티브로 한)이라는 인물의 구두를 예로 들자면, 야학 선생님의 구두가 그렇게 새 것처럼 반짝이는 것이 이 극에서 뭘 의미하는지 시간을 많이 들여 생각했지만, 배우가 캐릭터 연구를 성실하게 하지 않았다는 결론 말고는 내릴 수 없었다. 

80년 5월 광주의 주인공은 아마도 ‘광주’일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광주 시민, 광주의 정신일 것이다. 그런데 뮤지컬 ‘광주’는 광주보다는, 광주의 정신보다는 노래와 춤으로 40여 년이 지난 이 역사를 기념하는 데 치중하고 있었다. 

지난 역사를 연극 무대로 다시 보면서 아픔을 느끼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울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회한이나 분노를 느끼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아마도 지나간 그 시간에 있었던 그 사람들의 진정성, 인간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고 지금의 내 삶을 반추하고 싶었던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엔 뮤지컬 ‘광주’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는 극이었다. 뮤지컬 ‘광주’가 진정한 브랜드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그것이 광주를 사랑하고, 연극을 사랑하며 80년 5월 광주의 정신이 영원히 계승되기를 바라는 한 광주 시민의 바람이다.
임유진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