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겨울…그윽한 묵향에 빠지다'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문화일반
'깊어가는 겨울…그윽한 묵향에 빠지다' 
원묵회 창립 40주년 기념 전시회||30일까지 유스퀘어 금호갤러리||무등서예원 오명섭 원장 등 73명 참여
  • 입력 : 2022. 11.27(일) 15:54
  • 이용환 기자
일속 오명섭 작 '볼 관(觀)'. 무등서예연구원 제공

오는 30일까지 광주 유스퀘어문화관 금호갤러리에서 열리는 무등서예연구원 원묵회 창립 40주년 기념전에서 무등서예연구원 오명섭 원장과 제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무등서예연구원 제공

"서예는 끝이 보이지 않는 예술입니다. 저와 후배들이 지금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정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무등서예연구원 원묵회(源墨會·회장 하영동) 서예전이 30일까지 유스퀘어문화관 금호갤러리에서 열린다. 원묵회 창립 40주년을 맞아 열리는 이번 전시는 옛 것을 따라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법고창신·法古創新)는 무등서예원 오명섭 원장의 열정과 뜻이 담긴 전시회.

김길자·김영숙·김혜경·오정근·양지연 등 73명의 회원이 이백의 '장진주', 소동파의 '적벽회고', 다산 정약용 선생 '송풍루잡시', 두보의 '추흥'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명심보감'과 '독립선언서' 등도 전시한다.

오명섭 원장도 '차분한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볼 때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의미를 한 글자로 표현한 볼 관(觀)자 등 2점을 내놓았다.

1980년 광주 충장로 5가에서 문을 연 무등서예원에서 오명섭 원장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모인 '원묵회'는 1982년 정식 출범 후 광주학생회관 전시실에서 첫번째 회원전을 갖은 이후 지금까지 40년동안 단 한차례도 빠지지 않고 전시회를 열어왔다.

오 원장이 서예에 입문 한 것은 올해로 꼭 50년째다. 70년대 한글전용 정책에 따라 한자가 폐지되면서 한문을 배우기 위해 한문학원을 찾은 오 원장은 그곳에서 서예가 학정 이돈흥 선생을 만나 서예에 입문한 뒤 서예가의 길로 들어섰다. '곡성의 선비였던 할아버지의 무릎에서 천자문을 읽으며 익숙했던 그윽한 묵향에 빠졌다'는 것이 오 원장의 회고다.

이후 그는 전서, 예서, 초서, 행서, 해서 등 서예 5체를 바탕으로 과거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까지 자신만의 서체를 추구해 왔다. "서·화는 동원이다. 서로 발전하고 단 하나라도 섭렵하지 않으면 다른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오 원장의 서예론이다.

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5000 여명의 제자에게 서예 입문을 도왔다. 이들 중에는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 초대작가 15명과 시·도전 초대작가 등이 30여 명이나 나왔다. 컴퓨터가 일반화되면서 서예원이 점차 사라지는 시대에 서예 대중화라는 외길을 묵묵히 걸어온 셈이다.

오 원장도 국전심사위원장을 2번 역임하고 국전운영위원장과 광주시 심사위원장 등 50여 곳에서 심사를 진행했고 지금은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과 국제서예가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 추구해 온 가치는 서예가 문자를 조형적으로 형상화하면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인 만큼 조형미와 장법, 작품 전체의 구성미가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담아냈냐는 것. 제대로 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시와 서를 겸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제자들에게도 '손 재주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글씨를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올해로 서예인생 50년째에 접어드는 그에게 남은 꿈은 무엇일까.

"초심을 잃지 않고 욕심을 버리고 기본에 충실하다보니 지금까지 온 것 같습니다. 다른 예술도 그렇지만 특히 서예는 자신이 공부한 만큼만 완성됩니다. 올해로 서예 인생 50년을 맞는데 그 50년에 걸맞는 한차원 더 높은 나만의 작품세계, 오명섭의 50년을 회고하는 50주년 기념전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용환 기자 yhlee@jnilbo.com